“용산 참사, 경찰 농성 철거민 강제 진압 도중 화재로 6명 사망”
오늘 아침, 출근길 시민들의 눈과 귀를 얼어붙게 만든 뉴스의 주된 제목이다. 21세기 개명천지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다. 촐근하자마자 들은 현장 취재 기자의 보고를 듣고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어떻게 이룩한 민주주의인데…”라고 말이다. 작년 연말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해 이른바 ‘MB 법안’ 통과를 저지한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철거민 5명이 죽었다. 이들 중 최소 4명은 말 그대로 ‘불에 타서’ 죽었다. 그리고 경찰관 1명도 죽었다. 이 경찰관은 상부의 무리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복무했다는 것 외에는 죽을 이유가 없었다.
“한국의 Lee가 데모자들을 불로 죽였다”
이 소식을 제일 먼저 타전한 외신은 영국의 <로이터통신>이다. 서울 발 로이터통신의 기사 제목은 “Korea's Lee under pressure as fire kills protesters”다. 하도 창피한 제목이라, 이 자리에서 굳이 번역하지는 않는다.
통신은 기사에 “화요일, 경찰과 보다 좋은 보상을 요구하는 거주자 사이의 5층 건물에서 불이 나 5명의 한국인이 죽었다”면서 “경기 후퇴로부터 아시아의 4번째로 큰 경제를 끌어내는 일을 가속화되기 위해서 Lee가 내각의 경제 포트폴리오를 잘라 고친 1일 후에 벌어진 비극의 엔딩은, 이 대통령을 수세로 몰 수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어 “인기 없는 Lee가 반정부 항의자들에 의해 강력히 비판받아온 경찰 수뇌(chief)를 교체한 후 이틀 만에 불은 또 왔다”며 “Lee는 작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나라를 여는 그의 결정에 대하여 항의를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글로벌인 경제 위기 하의 정부 정책에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던 Lee는 최근 경제부처 수장을 교체했다”고 덧붙였다.
△용산 참사에 대해 보도한 로이터통신 기사 ⓒ로이터통신 홈페이지 캡쳐
같은 날, 일본의 <교도(共同)통신>도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인용해 “시위대와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났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이어 “용산의 한 4층 건물 옥상에서 사체가 발견됐으며, 해당 건물에서는 40여 명의 거주자가 월요일부터 점거 농성을 벌여왔다”고 전했다.
그럼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자.
먼저 <오마이뉴스>는 현장 목격자인 장동기 씨(40)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아비규환을 넘어섰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10m 이상 치솟았고 뭔가 툭 떨어졌다. 건물 옥상 위에는 세 사람이 끝까지 매달려 있었다”고 전했다.
또 불이 났던 오전 7시 경부터 현장을 지켜봤다던 서 아무개(50) 씨는 <오마이뉴스>에게 “불이 났을 때 경찰이 줄곧 7군데서 쏘던 물대포를 오히려 잠시 멈추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장동기 씨 외의 또 한 명의 익명을 요구한 목격자는 또 다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시위자들을 고립시키려고 (철거반원들이) 건물 3층에서 폐타이어를 태웠다”고 말했다.
‘남 탓’뿐인 이명박 정권
하지만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사상 최악의 사건을 두고도 이명박 정권은 ‘남 탓’ 뿐이다.
사건 현장의 진압 작전을 지휘했던 백동산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브리핑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본의 아니게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고 말했지만, 이어진 그의 발언에는 ‘애도’의 분위기 대신 ‘철거민 탓’만 가득했다.
백 서장은 브리핑에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들은 19일 5시 30분부터 자신들과 전혀 무관한 용산구 남일당 건물 5층을 무단 점거 후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경찰 병력과 대치했다”며 “남일당 건물은 주변 철거 대상 건물 중 비교적 옥상이 넓고 고층으로 한강로변에 위치해 경찰 병력에 대한 방어가 용이하고 농성 시 홍보효과가 크며 장기간 농성이 가능해 점거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백 서장은 이어 “계속된 경찰의 설득과 경고에도 불응하므로 더 이상 불법을 묵과할 수 없어 경찰은 금일 불법 농성장에 경력을 투입했다”면서 “앞으로 경찰은 검찰과 협의 사고 경위를 철저히 수사해 사실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강제 진압의 최종 승인자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현 서울지방경찰청장)이냐”는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한승수 국무총리 역시 ‘말로만 사과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20일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국무총리로서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서도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가진 정부 입장 발표에서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의 불법 점거농성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법을 집행하던 경찰관 한 명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시위 중이던 다섯 사람도 귀한 목숨을 잃었다”면서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오늘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겠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앞장서서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사과’라고 받아들이는 사람 몇이나 될까.
청와대의 반응은 더 가관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흔히 언론에 ‘청와대 관계자’ 혹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묘사되는 이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과격시위를 하면서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 않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마치 이번 사태의 원인이 현 정권 측이 흔히 쓰는 표현인 ‘불법·과격 시위’ 때문이라는 인식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들이다.
2005년의 노무현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통제돼야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청와대가 어떻게 대처했을까.
잠시 4년 전인 지난 2005년 11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WTO(세계무역기구) 쌀 협상안에 반발하던 농민대회 중 농민 전용철·홍덕표 씨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사망으로 최종 결론이 났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인권위의 조사 결과 발표 직후인 그해 12월 27일 청와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빈다”며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과 위로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극도로 반발하고 있었다. 특히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의 경우에는 이른바 ‘경찰 개혁을 지향한다’는 경찰대학 출신들이 주축이 된 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지지의 이유는 ‘임기제 보장’이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저의 사과에 대해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이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며 정도를 넘어 행사되거나 남용되면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치명적이다.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노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틀 뒤인 12월 29일 허준영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그는 사건 발발 직후 “불법 시위에 가담한 농민 2명의 희생 때문에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나선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의 집권 여당이자 2005년 무렵에는 거대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허 경찰청장 경질에만 그치지 말고 농민 시위의 원인을 제공한 박흥수 농림부장관도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한편 서울 용산 철거민 농성 현장에 대한 경찰 특공대 투입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은 20일 오후 용산경찰서에서 브리핑을 열고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청장과 차장, 기능별 부장들이 참석해 연 대책회의에서 특공대 투입을 청장이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 특공대 투입을 처음 건의한 인물은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라고 말했다.
이 말도 안 나오는 사태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시키는 가해자들의 뻔뻔한 얼굴에서 나는 ‘80년 광주’의 학살자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한다면, 시인 이원규의 시(詩) 구절 하나를 이명박 정권에게 들려주고 싶다.
“피(血)의 값에는 외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