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60

나는 중매장이(2) 시동생 아내를 잃다!


BY 남상순 2000-04-11

나는 중매장이(2) 시동생 아내를 잃다!
시동생 아내를 잃다!


한 밤중에 전화벨이 힘차게 울리더군! 항상 그렇지만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었지. 외국에서 전화가 오는 외엔 대개 운명하는 환자 가족의 전화가 보통 한밤중에 오는 법이거든?

태평양을 건너 날아온 시동생의 목소리! 형님을 바꾸라더군.새벽4시부터 일과가 시작되는 형님의 삶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았어.

'형님! 새로 집을 샀습니다. 저택이랍니다. 그리고 저 이제 평생 먹고 살것은 마련했습니다.' 압축하면 전화내용은 그런것이었네. 나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지. 그런 소식을 새벽 2시에 전화로? 하지만 남편은 자기일인 것처럼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더군! 망내 아우의 긴긴 외국생활의 보람을 눈 앞에 보는 다행스러움! 만족함! 형제간엔 질투도 느낀다더만...

나는 곰곰 짧은 산수실력을 동원하여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었지. 도대체 얼마나 저축을 하면 그 이자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남매를 거느린 4인 가족이 말일세! 물론 자녀교육을 포함해서지.

그 계산을 하다가 눈이 말똥말똥 해지더군. 난 원래 계산하다간 정확한 끝을 못내는 사람이거든. 덩달아 날밤을 새우고 말았다네.

그리고 겨우 1년이 지났던가? 기억은 정확치 않네만 비슷한 또 다른 전화를 받게 되었지. "형님 도와 주세요. **엄마가 자궁암 수술을 했습니다." 그 비통한 울부짖음을 듣고 너무나 허무했다네.

유난히 노랑색 옷을 좋아하던 여인! 시집올 때 그 무서운 반대를 막무가내로 가족의 축하를 받지못한 채, 한 많은 결 혼식을 올리던 여인! 방콕으로, 미국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유리방황하더니 이제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암투병인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구하여 무공해 마른채소를 보내 달래서 몇차례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그 여인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지. 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전화가 오기도 했었다네.

하지만 웬걸! 부산 동서가 미국을 가서 장례식을 마치고 왔다네. 큰 동서는 빚을 갚은 기분이었을 것일세. 그 여인이 우리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던 분이었으니까.

졸지에 남매를 남겨두고 홀아비가 된 시동생의 소식은 남편에겐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나바. 물끄러미 식탁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그이가 심상치 않더군! 내가 먼저 죽으면 어쩌나! 하고 들여다 보는 눈치였지.

그렇게 시동생은 사랑하던 여인을 먼저 보내고 말았다네. 다행한 것은 남매가 꿋꿋이 아빠를 위로하더라는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