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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국일보]엄마따라 대륙횡단 9,500마일


BY 운영진 2000-04-12

美 이주 3년 김호열-장숙 부부와 4자녀

2000년 4월 8일 토요일 자


"언젠가는 아이들과 함께 드??은 미국땅을 횡단해보리라"
이민 초기에 광대한 미국지도를 앞에 놓고 이런 꿈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를 실행에 옮기는, 아니 옮길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김호열·장숙씨 가족은 그런 면에서 매우 특별하고 용기있는 가정이다. 지난 해 여름 한달동안 네아이를 데리고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마친 김씨 가족은 돌아오자마자 주위의 친지들로부터 놀라워하는 탄성과 부러움 섞인 질문공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의 질문과 같다. 대륙횡단 어떻게 했나, 그 답변을 정리해본다.

▲준비
96년 미국에 온 치과의사 김장숙씨(43)의 대륙횡단은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시작됐다.
원래 여행 좋아하고 호기심 강한 성격 탓도 있지만 "미서부에 머물러 살며 다른 미국을 모른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는 그녀는 미국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1년전부터 여행을 계획했다.
구체적으로 일정을 짜기 시작한 것은 8개월전인 98년 12월. 여행의 주제를 '국립공원 순례'로 잡은 김씨는 전미국의 국립공원 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펴고 거리를 연결해 코스를 만들었다. 국립공원(National Park)에 관한 책 3권을 사서 읽고, 도서관에서 관련책자들을 찾아 공부했으며, 여행 두달전 앞으로 방문할 국립공원들이 표시된 대형지도를 거실에 붙여놓고 아이들이 공부하며 친숙해지게 유도했다. 김씨는 이 지도를 매일 쳐다보며 필요할 때마다 계획을 수정했고 아이들은 주 이름과 주도의 이름들을 익혔다.

한달전에는 AAA로부터 여행안내책자인 '트립틱'(TripTik)를 제공받았다. 트립틱은 AAA회원이 요청하면 무료로 보내주는 안내책자로 여행할 구간을 알려주면 그 지역의 현지지도와 구간간의 마일수, 소요시간등 각종 정보를 자세하게 담아 소책자로 만들어 보내준다.
3주전에 숙소예약을 모두 마쳤고 매일의 예상 여행일정을 자세하게 기록, 집에 남아있을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남편 김호열씨(44·미주두레본부장)는 업무상 한달을 비울 수 없어서 대륙횡단 전체 일정에 동참하지는 못했으나 매일 아내와 아이들이 묵기로 되어있는 호텔로 전화해 안부를 확인했고 3주후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때부터 마지막 일주일의 여행을 함께 했다.

▲여행 일정

99년 8월2일부터 31일까지 29일동안 25개 주를 지나는 9,500마일의 대장정이었다.
LA를 떠나 북상, 시애틀과 워싱턴, 뱅쿠버를 거쳐 서북부 끝에서 동북부 끝까지 횡단했고 거기서 남쪽으로 내려와 서쪽으로 대륙을 다시 횡단하면서 LA로 돌아왔다.

방문한 국립공원들은 ▲레드우드 ▲올림픽 ▲노스 캐스케이드 ▲워터튼 글래시어 ▲와일드 케이브 ▲배드랜즈 ▲섀난도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튼스 ▲매머드 케이브 ▲페트리파이드 포리스트등 모두 10개 국립공원을 돌아보았고 수많은 내셔널 모뉴먼트를 방문했다. 가장 좋았던 곳은 워싱턴주의 올림픽 내셔널 파크와 크레슨 레익이었다는 것이 전 가족의 일치된 의견.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은 98년 이미 여행한 적이 있어 일정에서 뺐다.
내셔널 파크에서는 꼭 안내소(visitor center)를 찾아 지도와 현지뉴스를 통해 책에서 얻은 사전정보와 비교해보면서 일정을 조정했으며 가능하면 짧은 트래킹을 하면서 자연속에 젖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이들에게 '국립공원 여권'(Passport to Your National Parks)을 하나씩 마련해주었는데 각 국립공원을 방문할 때마다 아이들은 안내소를 찾아가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스티커를 사서 붙이는 특별한 재미를 무척 즐거워 했다.
김장숙씨는 "발길 가는대로가 여행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어를 잘 못하고 여행지의 환경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리 예약하고 떠나는 것이 마음도 안정되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며 철저하고 치밀하게 사전계획을 세울수록 알차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한 대륙횡단은 아이들에게는 힘든 여행이라고 말하고 초등학생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고 최소 중학생 이상의 자녀와 함께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편 김호열씨는 대륙횡단을 끝낸 후 느낀 유익으로 세가지를 꼽았다.

첫째로 부모와 자녀가 오랫동안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게된 점. 사실 부모자녀간이라도 정확한 판단과 이해가 부족해 일어나는 갈등이 많은데 여행을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지켜보며 각자의 성격을 많이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는 미국에 대한 자신감이다. 이민온지 얼마 되지 않아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갖고 있던 아이들이 대륙횡단을 하며 직접 북부, 중부, 동부, 남부를 모두 다녀온 후에는 눈에 띠게 자신감을 보인다는 것.

셋째는 모든 여행의 당연한 수확으로 각 지역의 산 정보와 경험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숙소-그동안의 여행경험에서 베스트 웨스턴 인(Best Western Inn)이 가장 만만해 주로 프리웨이에서 가깝게 찾을 수 있는 베스트 웨스턴을 이용했다. 아침식사가 포함되는지, 수영장이 있는지, 동전 세탁소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전국 체인을 관장하는 센트럴 오피스를 통해 한꺼번에 날짜별로 각 지역의 숙소를 예약했다. 같은 주의 베스트 웨스턴이라도 도시에 따라 가격과 택스가 다른데 취소 원칙(cancellation policy)만 잘 따르면 손해없이 변경도 가능했다. 방 1개에 5인까지 합법적으로 숙박할 수 있으므로 예약시에는 4인으로 예약한 후 현지에서 1인을 추가하면서 임시침대(rollaway bed) 비용 7달러를 지불하기도 했으나 베스트 웨스턴도 각각 조건이 천차만별이라 그때 그때 알아서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격은 지역에 따라 퀸사이즈 베드 2개짜리 방이 하룻밤에 45-88달러.

한편 피상적인 여행보다 좀더 깊은 경험을 위해 올림픽 국립공원과 글래시어 국립공원등 2개 국립공원에서는 공원내(in Park) 숙소를 예약, 이틀씩 머물면서 좋은 공기속에 여유있게 자연을 즐기기도 했다. 이 두곳은 6개월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했으며 가격은 하룻밤에 약120달러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김씨는 말했다.

▲운전-차량은 크라이슬러 보이저 7인승 밴. 여행중 달린 총 마일수는 9,500마일. 다니면서 오일체인지를 두 번 했고, 한번 시동이 안 걸려 토잉하고 수리하는 어려움을 겪은 외에는 별 무리없이 일정을 소화했다.
출발때부터 3주후 뉴욕의 친지집에서 남편을 만날 때까지 줄곧 김장숙씨 혼자 운전했고 이후 LA도착때까지 일주일간은 남편이 운전했다. 밤에 자고 낮에 운전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하루 8시간이상 운전하지 않았으며 매일 아침 출발때 개스를 가득 채웠다.

▲경비-약 5,000달러가 소요됐다. 그중 2,000달러가량이 숙소에 사용됐고 자동차 개스비가 약 2,000달러, 그리고 나머지 식비, 입장료, 기타 경비가 1,000달러정도 들었다. 이 비용은 김씨가 미리 숙소들을 예약할때 AAA멤버 디스카운트를 받는등 알뜰한 계획하에 쓰여진 최소한의 경비다. 또 국립공원들의 입장료는 '이글패스'(미국내 모든 국립공원의 1년 회원권-차량 1대당 50달러)를 구입해 간단하게 해결했다.

▲음식-김과 햇반을 조금 가져가 가끔 밥을 먹었고 뉴욕서 떠나올때는 친지가 전기밥통과 밑반찬을 싸주어 몇끼를 해결했다. 그러나 보통은 아침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브렉퍼스트를 먹었고 때로 점심은 현지마켓에서 구입한 고기를 공원 피크닉구역이나 휴게소같은 곳에서 구워먹었다.(프라이팬과 휴대용 개스레인지를 가져갔다.) 그 외에 사먹기도 하고 패스트푸드를 먹기도 하면서 될 수록 호텔방에서 냄새 피우며 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맥도널드 햄버거.

▲아이들
아령(16), 우영(14), 누리와 세영(13) 쌍둥이들은 처음 엄마의 대륙횡단 제의에 찬성보다는 반대를 많이 했다. 차를 오래 타야하는 것도 싫고 한달이나 여행하고 돌아오면 새학기 준비가 늦어진다는 것. 김씨는 '딜'을 맺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공상과학소설 'Dragon' 전7권을 사줬고 아이들은 군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여행 일주일쯤 지나자 좁은 공간에 늘 붙어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짜증을 내고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여행지 인근의 코스코에 들러 게임보이와 CD플레이어를 사주었는데 그 효과가 1주일쯤 가더라고 김씨는 전했다.
"같은 식구가 한달동안 하루 24시간 같은 공간에서 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김씨는 회상한다.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길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공간이 없는데서 오는 피차간의 짜증이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었던 셈. 사춘기의 틴에이저 아이들 4명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미국을 보게 하려던 목적은 달성했다. 학교에서 소셜스터디 시간에 나오는 미국 각지의 국립공원들은 모두 다 가본데라며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한다고 전한 김씨는 "아이들은 노느라, 자느라 안 본거 같으면서도 다 봤더라"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