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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은 괴로워


BY 두리 2000-04-20

희먕찬 새천년 1월 1일 그이는 수십년간 열렬히 사랑하던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 험난하고 힘든 시간들이 흘러 벌써 4개월이 다 지나 갑니다. 100일째 되는 날에는 기념으로 둘이서 맥주도 한잔하면서 조촐한 기념식도 치렀지요. 내친김에 노래방에도 갔습니다. 총각시절에는 자칭 타칭 카수였던 그이는 담배로 성대가 변해 신혼시절 한번 시작했다 하면 수십곡씩 불러재껴대던 노래실력이 형편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담배를 끊은 후 다시 재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시험 무대였지요. 놀랍게도 그의 목소리는 옛날의 화려했던 전성기만큼은 못했지만 꽤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노래 부를 기회가 없어 아는 래파토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내가 노래방에서 그나마 아는곡 들을 입력해 주고 그이는 신나게 불러 재꼈습니다. 1시간이 지난후 그이는 의기양양하게 노래방을 나오며 담배가 얼마나 나쁜놈이었는지를 입에 침을 튀겨가며 성토했지요.


그때 재미를 붙인 그이는 틈만 나면 노래방애 가자고 졸라댔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가라고 하면 실력을 더 길러서 뽄때를 보여야 한다며 저와의 동행을 요구했지요. 그가 잘부르는 노래는 이런 곡들입니다.

배신자. 과거는 흘러갔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 우중의 여인등등.. 매번 변하지않고 몇번이고 부릅니다.


<marquee> 배신자여어어어---배신자여어어-- </marquee>

아무리 뉘우쳐도 과아거어느은 흐을러아가아따---

더 못견딜것은 우중의 여인이라는 곡입니다. 아니 빗속의 여인도 아니고 우중의 여인이리니 제목부터 이상한데 가사에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창~문을 두드리고 흐느껴 우는 여인어쩌고 하는건데 정말이지 엄청난 인내의 한계를 느낌니다,

듣기만 하기도 지루해서 내가 다른 노래라도 부를라치면 너에게 무리한 곡이니 다른데선 부르지마라, 음정이 틀렸다,박자도 틀렸다하며 면박을 주고, 아니면 화장실에 간다고 사라짐니다. 시간이 아까워 저는 가출한 여인네 처럼 혼자 노래를 부를수 밖에.

어느땐 은근슬쩍 졸기까지합니다. 어제도 저녁을 먹은 그는 "여보 노래방 가자" 이럽니다. 제발 누구 말려줄 사람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