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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갈맛의 추억


BY 향녀 2000-05-04

추억. 최진실과 김승우의 아기자기한 사랑얘기로 단지 진부해 보이는 제목이 그럴듯 포장되었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누구나 추억을 빼먹고 산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는건 추억밖에 없고, 솔솔 빼먹는 맛이 컴퓨터 두드리며 몇갠지도 모르는채 입에 까 넣은 미제 키시즈 초코렛보다 더 달콤하다.
하지만 나에게 추억은 어느날은 초코렛보다 더 달콤하지만 어느날은 빼갈의 쓴 맛과 같다. 대학시절 학교앞 낙궁이라는 중국집에서 빼갈과 짬뽕과 야끼만두를 시켜 남자친구의 되지도 않는 인생론에 심취해 몇잔을 홀짝일 때, 빼갈은 분명 쓴 맛이었다. 독한, 역한 냄새에 속이 뒤집어지면서도 대찬 여인네로 보이려고 그렇게 너덧잔을 꼴딱였다. 그런 빼갈 맛처럼 지난날의 추억은 차라리 가슴에 가둬둔 못된 고양이 마냥 앙탈을 부리며 가슴을 할킨다.
노란 교복을 입고 학굘 다녀서일까? 내 추억속에 유년은 언제나 노란색이다. 부서지는 봄햇살에 남산 개나리 담장을 옆에 낀 언제나 변함없는 노란색이다. 그런데 그 노란색의 추억들이 문득문득 마음을 할키는거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육신도,나의 영혼도. 추억을 빼먹는 달콤함보다 상실감, 절망감에 흐느적 댈 때도 많다.
미국엔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따로 있다. 5월 두째주가 어머니날인데 백화점에 포스터가 마음에 밟힌다. 수영복을 입은 어린 딸과 엄마의 뒷모습, 곧 엄마의 풍만함을 따라 잡을 어린것의 흘러내릴 것 같은 수영복에 웃음이 머물고 엄마의 세월먹은 엉덩이에 욕정의 눈길보단 모성의 눈길이 멈추어진다.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아직도 내 곁에서 늘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그러나 같이 했던 날보다 훨씬 짧은 날들만 함께 하실. 엄마 가슴의 커다란 대못, 마마걸에 예스걸이 무섭게 반항하여 뽑을래도 뽑을 수 없는 커다란 대못을 박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 엄마가 지금의 내모습인 나의 유치원 졸업사진이 보인다. 엄마는 보라색 한복에 화사한 웃음이다. 그래서 내가 보라색을 좋아하는걸까? 엄마와 함께 쌓은 추억, 지금은 단지 회한으로 가득찬 빼갈맛으로 다가오는데 훗날 어떤 쓰라림으로 다가설지.
빼갈을 안마신지 오래되었지만 내 마음의 추억은 언제나 내게 빼갈잔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