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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에 시 쓰기... (울프를 생각하며...)


BY 박미애 2000-05-12







통신에 시 쓰기



김선영



PC통신을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하하 호호



인사도 잘한다 어디 살고 몇 살이고 결혼은 했는지



물어보고 대답한다 신기한 일이다 그가 어디 사는지



난 왜 궁금해하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에게



이해시키나 손으로 말해야 하는 우리들 머리에서



나온 생각을 열심히 타자로 전하는 우리들 모니터



앞에서 킬킬 웃기도 한다 매일 만나 안부하고 옆집



아이 아픈 것보다 부산 사는 친구 일을 먼저 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말한다 언제부터 그런 걸



잊고 살았는지도 잊은 우리, 왜 사는지도 말해 본다



커피를 대접받기도 하고 장미를 한 아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향기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허상이다



그저 느낌만을 얻을 뿐이지만 말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



동안 낯익은 곰팡내 나는 침묵의 말보다 위력적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져 섬처럼 사는구나 싶다가도



모니터 앞에 앉으면 철딱서니 없는 가시나가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바라보게 된다 내가 모르던 내가



어느 날 걸어온다 잘 있었냐고 인사까지 건넨다 써지지



않는 시를 잊으며 통신을 한다 한 토막도 떠오르지 않는



시 대신에 게시판엔 도배를 한다 저기서 지켜는 누군가



킬킬대며 너 시인 맞아? 물어도 킬킬대며 아닌 것 같아



대답 나올까 무섭다 지금 시 못 쓰는 내가 쓰는 이게 시



아닌 것처럼 내 맘도 시를 잊었지만 어쩜 이것도 시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이야기마당에 들어선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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