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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눈물 없이는 읽을수 없는 "고단수 엄마" 이야기


BY 빨간머리 2000-05-30


여느날처럼 평온한 저녁이었다. 집에서 저녁 먹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날도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맛있게 먹고 그대로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때 그 느긋함을 깨면서 나의 호기심을

몹시 자극하는 작은 사건이 생겼다. 막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산수도

배우고 글도 제법 말이 되게 쓰기 시작한 아들녀석이 바로 그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아내의 설거지가 거의 끝나갈때쯤 아들녀석이 무슨 종이 한장을

들고와서 나의 아내, 즉 제 어머니에게 봐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좀 자세히 보니 그건 아마 노트를 찢은것 같았고 거기에는 무언가의

글과 숫자들이 그럭저럭 줄을 맞추어 쓰여져 있었다. 그걸 내미는

아들 녀석의 얼굴에도 알듯모를 듯 한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아들 녀석의 성화에 아직 몇 개 남은 그릇을 개수통에 남겨두고

손의 물기를 털어 내는 아내. 그리고 종이를 받아든 아내의 그 묘한

표정. 정말 나도 호기심이 나서 더 이상 신문을 보는 척 하고만

있지는 못하고, 무어냐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 쪽지를 보던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돌기 시작했고, 아내는

쪽지를 내앞에 내려놓고 싱크대의 서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아까 가게에 심부름 갑.................500원

내 방 책상 치운 갑....................200원

아침에 아빠 구두 가지런한 갑..........300원

아까 장난감 놀구 치운 갑..............500원

예삐 우유준 갑........................500원

오늘 말성 안하구 숙제 다한 갑.........700원

밥안 남기고 다 머근 갑................300원
--------------------------------------------

다해서...............................3000원"


허참, 고놈.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했지.평소엔 자느라 아침엔

얼굴도 안보이던 녀석이 오늘은 왠지 아침부터 현관에서 기다리다

졸린 눈으로 인사하던 것도 그렇고 아까 굳이 강아지 예삐 밥을

주겠다고 떼쓴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군. 어딘가 삼천원이 필요한

모양이군. 나는 아내의 다음 행동이 몹시 궁금해 졌다.

과연 돈을 줄까?나라면 줄텐데....

아내의 평소의 신조가 용돈은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고 보면....

나도 못하는 일을 아들 녀석이 과연 해낼수 있을까?

아내가 싱크대 서랍을 뒤져 꺼낸 것은 지갑이 아니라 볼펜이었다.

아내는 식탁으로 다가와 앉아 아들 녀석의 쪽지 아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열 달 동안 너를 내 몸 속에 보호한 값.............공짜

너를 낳느라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던 값.....공짜

매일 네게 우유 주고 기저귀 갈아주던 값...........공짜

네가 아플 때 한숨도 못 자고 너를 걱정하던 값.....공짜

매일 너를 씻기고 안아 주는 값....................공짜

그리고 앞으로 해줄 모든 일들................모두공짜"


나 못지 않게 식탁 모서리에서 제 엄마가 무얼 하나 궁금해하던

아들녀석은 다시 쪽지를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엄마의 품속으로 달려들어 아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흐느낌 속에서 간간이 무언가 말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이러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엄마 미안해...다시는 돈 달라고 안할께. 고마워. 나 장난깜 안

사줘두 되구...나 피자 안먹어두 되. 엄마 사랑해요..."


내 아내와 내 아들이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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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과거 기억이

필름처럼 촤라락 펼쳐졌다


'이 녀석아 너도 당하고 만거야(--+)...나처럼...

니 엄마 단수가 보통인 줄 아니... 너도 참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