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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에서 퍼온기사


BY 퍼온 아줌마 2000-06-23


▲ 김수희 리사이틀 무료초대권

ⓒ2000 배을선 기자

광화문 일대에 '가요계의 여왕 김수희 리사이틀' 이라는 공연 무료티켓이 설렁탕집, 죽집, 빈대떡집, 편의점을 비롯해 노상의 떡볶이집까지 배포되었다. 무료초대권이라는 달콤한 유혹때문인지, 며칠이 지나자 티켓 한 장 구하기가 힘이 들었다.

어렵게 구한 초대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왼쪽에는 모자를 쓴 가수 김수희의 사진이 있었고, 바로 옆 가장자리에는 신곡발표 앵콜공연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가운데에는 스트레스를 씻어주는 감동의 음악회, 가요계의 여왕, 김수희 리사이틀이라고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큼직하게 쓰여져 있었다. 그 밑에는 작은 깨알같은 글씨로 레크리에이션 및 다함께 노래부르기, 우수기업 특별기획이라고 적혀있다.

우수기업 특별기획? 공연기획을 한 곳은 진문화기획이라고 적혀져 있는데, 그럼 진문화기획이 우수기업인가? 아니면 다른 우수기업이 공연협찬을 한다는 말인지..
회사의 이름은 나와있지도 않다.

공연의 일시는 6월 22일부터 6월 23일 양일간, 2시와 7시에 한번씩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이 있다며, 뒷면에는 약도까지 그려져있다.
그리고 '입장료 오만원'이라고 쓰여진 숫자위에는 크게 X자로 지워져있고 2인 무료 초대권이라고 쓰여진 밑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본 초대권 1매로 2인까지 무료 입장
-18세 이하 어린이 동반자 입장 불가
-65세 이상 고령자 입장 절대불가
-단정한 복장 요망

왜? 18세 이하 어린이는 입장이 불가할까? 레드 등급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도 아니고, 너무 어린 유아가 공연진행의 순조로움을 망칠 우려가 있다면, 5세나 8세 이하도 아니고, 도대체 성인식을 치루지 않은 나이면 김수희의 공연에는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인가?

왜? 65세 이상 고령자의 입장은 '그냥불가'도 아니고 '절대불가'인가?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연령의 상한선에 금을 긋고, 연장자의 입장을 금지하는 공연은 없다. 그것은 개인의 볼권리를 침해하는 일종의 '연령차별(Age Discrimination)'이기 때문이다.
단정한 복장 요망? 호텔에서 하는 디너쇼도 아니고, 복장은 얼마나 단정해야하는지?

김수희 리사이틀을 주최한 '진문화기획'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화를 받은 남자직원은 처음에는 담백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다, 누구냐고 물어본 후, 기자라는 대답에 조금은 거친 듯한 어조로 바꾸어 말을 한다.
"저희는 그냥 공연의 순조로움과 고령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나이제한을 둔 것이고,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시면 다 들여보낸다니까요."
그럼 18세는? 어린이도 아닌 청소년은 왜 입장이 불가할까?
"그것은 좀, 어린이가 맞는 말 같네요."
그럼 우수기업은 진문화기획인가?
"우수벤처기업이 자사를 홍보하려는 이벤트행사예요, 우리 벤처기업이 요즘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홍보를 하려는 것이고, 김수희리사이틀을 전액 부담하는 겁니다. 회사이름은 '핫셀 메디칼'이고요."
힘든 벤처기업? 아무리 홍보라지만, 힘든 벤처기업이 공연비를 전액 부담하다니, 힘든게 아니라 건강한 벤처기업이 아닐까?

22일 오후 2시. 정동문화예술회관앞. 기자의 전화내용이 이번 공연에 영향을 미쳤을까? 몇몇 김수희 포스터에는 단지 '어린이 입장 불가'라고만 적혀져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표를 받는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입장객들에게 김수희 노래 가사가 적힌 흰색 A4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자리는 대강 빈자리에 앉으면 되는가보다. 단정한 복장을 요망한 공연은 여기저기 무리지어 앉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정확히 오후 2시 5분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조씨. 이번 행사가 삼호전자의 기획으로 이루어 졌단다. '핫셀 메디칼'이야기는 일절없다.

마이크를 건네 받은 것은 김수희 씨가 아닌 청솔푸른밴드의 이씨. 그는 200여명 아주머니들(그중 몇몇은 아저씨들)의 기분을 30분간의 노래와 레크리에이션으로 즐겁게했다. 그 사이 공연장은 아줌마들의 웃음소리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1명의 아저씨와 2명의 아주머니는 무대에 올라가 신나게 춤을 추고, 그 대가로 자석금팔찌를 각각 받았다.

2시 35분, 삼호전자의 전무이사가 나와서 자사의 제품인 '오존살균기'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삼호전자는 우수벤처기업으로 너무나도 좋은 '오존살균기'를 단지 홍보하기 위해서 나왔다며, 그 기계는 수돗물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며, 과일과 야채의 농약을 산화시키고, 무좀과 여성의 냉·대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며 장장 1시간이 넘게 이야기했다.

무대 앞에는 오존살균기 2대와 과일과 야채, 20리터 짜리 물통 등이 준비되어, 전무이사의 홍보를 생생히 도와주었다. KBS와 MBC 뉴스에 보도된 내용도 녹화해서 틀어주었다.
이런 행사가 지금까지 250번째라며, 여태까지 행사를 도와준(?) - 행사의 이름은 김수희 리사이틀인데, 그녀는 행사의 주체가 아니고 도와준 사람? - 여러 가수들과 공연의 이름, 예를 들어 '품바' 등을 소개했다.

이 기계의 가격은 대리점을 통할 경우 598,000원이지만, 이 공연에 오신 분들에 한하여 특별히 할인된 가격인 298,000원에 판매한다며, 나눠준 A4용지에,
①주소를 정확히, ②전화번호를 정확히(휴대폰이 있다면 그것도 정확히), ③존함석자를 한글로, 요즘 여직원은 한자를 몰라서... ④가격은 298,000으로, 원하는 만큼 3개월에서 10개월까지 가능한 할부기간을 명시해서 적어주면,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종이를 회수하니, 간단하게 물건구매 끝.

'오존살균기'는 택배회사를 통해 3~4일 안에 배달이 되며, 애프터 서비스도 확실하니, 믿고 구입하시고, 써보고 좋으면 이웃들에게 홍보를 잘 해달라며, 하지만 그분들은 공연장에서 구입을 안하셨으니, 우리회사 대리점들도 먹고 살 수 있게 598,000원에 구입해야 한다는 전무이사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정확히 3시40분, 가수 김수희가 하얀색 정장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으며, 신곡으로 '단현'이라는 노래와 '남행열차'를 비롯, 4곡을 열창했다. 김수희가 무대에 섰던 시간은 대략 25분.
김수희 리사이틀은 그렇게 끝났다.

공연장에 나와있던 삼호전자의 직원들에게 초대권에 명시된 내용에 대해 물으니, 연령제한에 관한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것은 순전히 공연 안전상의 이유였다며 어쨌든 오는 분들 다 들여보냈으니 된 것 아니냐며 답변을 피했다.

삼호전자의 ○부장은 이름을 알려주기 싫고, 명함도 없다면서, 별걸 가지고 기사를 쓰려한다며, 공연장에서 본대로 쓰라고 한다. 주위에서 기자를 둘러싼 40대 남자 몇몇이 '안전상' 써넣은 것이라며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공연의 2배가 넘는 시간을 자사의 물건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데 소비하고서는 '김수희 리사이틀'이라는 제목으로 과대광고를 하는 것에 있다.
초대권만을 보고서는 어느 기업이 어떤 상품을 홍보한다는 것은 전혀 눈치 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연홍보상, 무료로 배포되는 초대권을 횡재했다 생각하고 찾아왔을 것이다.

무료이든, 유료이든, 김수희노래를 듣기 위해 온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은 아무 소리 없이 지루한 홍보를 듣고, 가족을 생각한다며, 좋은 물을 마신다며, 하나 둘 기계를 구입했다.

이런 들뜬심리를 이용한 판매홍보, 즉, 기분좋게 레크리에이션으로 적당히 웃겨주고, 분위기를 띄워준 다음, 물건을 판매하고, 가수 김수희를 내보내어 지루했던 시간을 달래어주는 이 회사의 홍보는 결국 '상품구매력'을 가진 18세 이상 65세 미만의 '주부'들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다. 선량한 주부들은 '얄팍한 홍보전략'에 속아, 가수 김수희의 25분간 공연입장료로 298,000원을 지불한 것이 된다.

'오존살균기'를 사용했다는 몇몇 주부들은 '꽤 효과가 있는 기계'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온 주부들 몇몇은 '꽤 불쾌한 자리였다', '말이 공연이지, 세상에서 제일 긴 광고였다', '잠만 자고 갔다', '애써 시간내어 왔는데, 노래 4곡이라니, 아무리 무료라지만 너무했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요즘은 우후죽순으로 창업하는 모든 회사들이 다 벤처회사라고 말한다. 벤처회사들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벤처회사들이 홍보와 판매까지 벤처(venture : 위험을 무릎쓰고 과감하게 해보다)할 수 있다는 것일까?

벤처회사들의 양심적인 홍보와 판매전략도 필요하겠지만, 벤처산업을 장려하기만 하고 제대로 육성하지 않는 정부도 이제는 관심을 갖고 '그들의 리사이틀'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나이 50줄의 벤처대표가 상품 하나 팔아보고자 땀과 침을 흘리며 광고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슬픈 우리네 아버지의 초상화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