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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언제 오려나!


BY 슬픈 아줌마 2000-06-28

저는 딸 하나를 둔 아줌마입니다. 아직 둘째 계획은 없지만 만약
둘째를 갖는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 예쁜 딸아이를 위한 선물을
주기 위함이고 그런 이유에서 같은 딸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나라의 묵은 아들 타령, 답이 없는 그 타령에 또 하나의
지루한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고 타박하실 다른 아줌마들도 많으시겠지만
저는 이 지루한 타령이 도대체 언제 끝날건지, 대체 끝날 가망성은
있는지 생각해보면서 우울한 심정을 달래고 싶습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는데요, 얼마전 제 동료가 친구 전화를 받으며
혀를 끌끌 차대요. 얘기인즉슨, 딸 둘을 가진 친구인데 아이를
가지고 성별을 파악할때쯤이면 어김없이 시아버지가 병원에
가잔대요. 그리고 딸임을 알게되어 지운것이 1년 사이 벌써
세번째라는군요.

엊그제는 모처럼 아이 친구 엄마들과 집에서 간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지요. 그중에 한 엄마가 셋째 아이를 가졌는데 (딸 둘이 있지요)
사진을 찍어보니 고추가 선명히 보이더라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대요.
그걸 보고도 불안해서 의사선생님께 딸이면 지우겠다고 했더니
(그 엄마는 이미 임신 6개월인데요) 의사선생님이 걱정말고
기다리라 했다고 입이 찢어지더라구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저는 정말 슬퍼집니다. 그래서 저의 짧은 역사지식을
동원해서 우리나라가 조선초만 해도 원래 남녀평등나라였다.
신사임당시절에만 해도 재산분배에 있어서 출가한 딸도 아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등분으로 재산을 물려받았고 집안 제사도 돌아가면서
할 정도였다. 지금의 아들타령은 조선 중기부터 국가 기강을
세우려는 명목으로 왕들이 군주권을 세우기 위해 그저 군왕에 복종하라
하면 백성들에게 명목이 약하므로 집안의 기둥은 가장이며, 나라의
기둥은 군주이므로 집안사람은 가장에게 복종하고 백성은 군주에게
복종하라는 명목하에 호주제가 강해지고 이러한 맥락에서 장남을
통한 혈통유지라는 슬픈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아줌마들의
아들타령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잘못된 호주제를 고치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군주제가 안겨준 장남, 아들타령을 벗어나서 적어도
나의 자식의 성별을 나의 시부모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벗어나야
한다. 대충 이런 식으로 열변을 토했지요.

아들타령하는 이유가 정말 순수하게 본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타당하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부모의 등쌀에, 그 등쌀에
남편도 덩달아 아들타령을 하고 그래서 4개월, 5개월 자라던 딸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것이지요.

도대체 그렇게 뱃속의 둘째, 셋째 딸을 지우면서 그것이 바로 지금의
너무도 귀한 첫째딸을 죽인거나 한가지라는 생각을 왜 하지는 않는
걸까요? 제가 너무 심한 비약을 한 걸까요?

저는 위의 시아버지같은 사람은 준살인죄로 형사고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요. 4개월만에 무참히 살해된 그 3명의 손녀들과
또 연이은 낙태로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제 명까지 못 살것 같은
그 며느리에 대한 살인죄와 폭행죄로 기소해야 되는 건 아닐까요?

또 제 이웃집 아줌마처럼 비록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니까 설사
지우진 않았지만, 만약 딸이라면 지금 6개월이어도 지우겠다는
그 말로도 살인협박의 죄명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요?

저는 이 세상이 뱃속의 딸들에게 너무 폭력적인것에 마치 제 딸의
친구, 동생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섬뜩함을 가지게 됩니다.
씨랜드 참사사건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너무나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연한 사고도 아닌, 그 부모, 시부모의
계획하에 무참히 살해되는 우리의 딸들...

그래서 저는 요즈음 또 다시 슬픕니다. 이 처절한 아들타령이
끝나지 않는 세상에서 크면서 저와 같은 이런 슬픔을 맞닥뜨릴
제 딸을 생각하면서 더욱 슬퍼집니다.

언젠가는 아들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