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그대 등뒤에 사랑이 있습니다.
보낸이:함춘봉 (까만돌 ) 2000-06-29 21:30 조회:90
같은 교우인 친구는 4단지에 살고 있습니다.
성당은 4단지 너머에 있고..
어쩌다 친구와 성당 모임에 가려면
1단지에 사는 죄로 늘 그 친구를 모시러 가야합니다.
친구가 사는 동네 길목에는
늘 그 친구가 깡총거리며 건너다니는 건널목이 있습니다.
그 건널목 쯤에 차를 대기 시켜놓고
음악을 낮게 깔고 향수 한 방울 톡~ 떨궈 놓으면..
친구는 여왕처럼 기뻐하며 내 목을 얼싸 안습니다.
사실 뭐..사랑이 별거겠습니까?
성별을 떠나서..걍 내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거 챙기고
내 조그만 수고에 그 이쁜 사람이 기뻐하면 그 모습 보면서 즐겁고
어쩌다가 뺨에 뽀뽀라도 받을라 치면 그게 사랑이고 애인인거죠.
오늘도 그 친구를 모실 일이 있어서 건널목에 차를 대기시키고
친구가 오나..하고 눈 빠지게 건널목을 보고 있자니..
삼십대 쯤의 남자와 아이가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예쁜 그림이
눈에 화악~ 들어옵니다.
사실..그 아침에 남자가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넌다는건 좀 드문일이라..
내 관심은 온통 그 부녀에게 확~ 쏠리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삼분의 이쯤 걸어오던 남자는 갑자기 아이의 등을 밀면서
빨리 가라고 하고는 자신은 오던 길을 바삐 되돌아 가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재빠르게 인도로 올라서서는
되 돌아가는 남자를 향해 아빠~ 빠빠이~~`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에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손만 한 번 번쩍 들어보입니다.
아마도 남자는 신호가 바뀔까봐 마음이 바쁜 모양이였습니다.
남자가 뒤도 안 돌아보자..아이도 마음이 다급해 지는지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입에 대고는 더 크게 소리 지릅니다.
아빠~~~~~~~~~빠빠이~~~~~~~~~!!
남자는 여전히 뒤도 안 돌아보고는 기여코 길을 다 건넜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 빠빠이~ 를 외쳐 대고 있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따라서 내 마음도 괜히 바빠지고..
제발 한 번만이라도 돌아서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줬으면..하는
소원까지 품으면서 계속 남자의 뒷 모습을 쫓습니다.
하지만..남자는 그냥..동네 속으로 총총히 사라지고 맙니다.
아이는 소리지른게 힘이 들었던지 쪼그리고 앉습니다.
그리고 여전히..손을 흔들면서 빠빠이..의 모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여전히 조그만 입술을 힘 없이 움직이며 빠빠이..빠빠이..
그런 아이의 모습을 차 안에서 쭈욱 지켜보던 난..
갑자기 목이 콱~ 메어지면서 서러워 집니다.
아이야..넌 오늘 세상으로 부터 [무심] 이라는 아픔을 배웠구나..
준 만큼 받지 못했던 오늘의 조그만 기억이 제발 널 조숙아로 만들지 말길..
오늘은 참 이상한 날 입니다.
아침에 보았던 그 아이의 슬픔이 하루종일 따라 다녔습니다.
아빠의 무심함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아이는
곧 도착한 노란 유치원 차에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표정으로
버스에게 먹히듯이..스며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오늘 하루종일 어떤 마음이였을까요..??
혹시..아이에겐 엄마가 없는것이 아닐까요..??
무엇이 그 아이의 아빠의 뒷 모습을 그렇게 바쁘게 만들었을까요..??
슬픔은..사람을 참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하루종일 가라앉아 있으면서..
혹시..누군가가 내 등 뒤에서..그 아이처럼 빠빠이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흠칫~ 놀라 보았습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그 사랑을 말입니다.
혹시..님들도..
누군가가 님들의 등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건 아닐까요..??
내 등 뒤에서 흔들고 있을 그 사랑을 혹여 아프게 할까봐..
하루종일 뒤를 돌아보는 하루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