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에 나른했던 오후가 기지개를 폈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가슴이 왜이리도 주첵맞게 뛰는 건지...
ㅇㅇ역에서 버스를 내렸다.
누군가를 만나 위해..
저쪽에서 성큼 성큼 걸어오는 얼굴하나..
십년전 처음 아르바이트 나간 회사의 대리였다.
매일 의견 충돌로 다투기가 일쑤였고, 싸우면서 정든다던가..
퇴근후 오토바이로 바람 쐬주던, 그러던 어느날 프로포즈 했고, 나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거절했었다. 많이 가슴 아파하는 모습에 내색은 안했지만 나 또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10개월의 인연을 접고 졸업후 다른 회사에 취직.
가끔 들려오는 소식을 접했고, 먼발치에서 몇번을 바라만 보았던... 이듬해 그는 결혼을 했다. 알고지내던 선배와..
옆동네에서 둥지를 마련했던 그는 자기의 일을 시작했고, 하필이면 동창을 통해 연락이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의 연락이 부담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결혼을 했고(22살에), 너무도 바쁘게 지내는 바람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 동창에게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 그가 한달안에 멀리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이면 내 얘기를 가끔해었다면서)
그러나 만나지 않았고, 그는 떠났다.
사람 사는 것이란..
세상은 넓고도 좁다했던가..
나역시 남편의 직장 관계로 이사를 했었고, 그의 거주지와 같은 '도'였다. 나의 동창은 가면 외로울테니 연락해 보라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었고 나는 무심코 받아들었다.
어느 무료한 오후, 문득 생각이 나서 (사실 나의 감정이란 그저 옛 직장 상사였으니까) 전화를 해보았고, 너무도 반가와하는 바람에 내심 놀랐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번 만나기로 했다. 사실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사는지, 또 어떻게 변했는지..
ㅇㅇ의 거리는 너무도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점심 식사후 근처 공원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서로에게 궁금한 질문을 했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도 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얼굴만 붉혔다.
끝까지 웃음으로 대답을 회피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그렇게 몇번 전화가 왔었고, 내 마음도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한다. 거짓말 하나도없이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 할 것이다.-
일주일전 전화로 나에게 '나그네'로 삼행시를 할테니 운을 띄우라 한다.
나 : 나 아직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 : 그대도 아직 나를 사랑합니까?
네 : ...
나는 아이가 둘 있는 엄마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