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오후에 회사에서 일을 보면서도 내내 이상한 기운이 가슴을 휑~하고 휘감았다. 아마 비때문일꺼야.... '이놈의 비...'이렇게 투덜대며 오후를 보냈다.
술이라도 한 잔 하면 좋겠다...
피이~ 술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내 자신이 우습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한 두병은 혼자 마셔댄 사람처럼 온 얼굴의 빨개지고...목까지 팔뚝까지 온통 빨갱이가 된다. 그래도 오늘은 술 한잔 하믄 참 좋겠다.
동생과 간만에 통화를 했다.
친정엄마가 목소리가 별로 안좋다고 한다. 늘 걱정이 많은 애인지라 역시 이번에도 엄마 걱정에 기운이 없다. 자그마하고 야물딱진 우리 동생... 어려서부터 우리집에선 젤로 부지런하고 깔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도 학교에 다녀오면 어지러진 집안을 혼자 눈물을 흘려가며 치우곤 했었다. 5남매가 들쑤셔 놓은 방안을 지저분한 방안을 그대로 두지 못하곤...울면서라도 정리하던 동생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보다 먼저 시집을 가서인지 어떨 때는 나보다 훨씬 철이 든 것 같다. 친정부모님 걱정하는 마음을 보면 언제가 그 애가 내 언니 같다.
엄마는 오늘도 가게를 보고 계시겠지... 지금은 밤 10시 30분, 엄마가 졸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엄마는 늘 밤 10시가 넘어서면 가게를 보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래도 시집오기 전에는 가끔 '엄마, 내가 가게볼께..그만 자...'라고 얘기도 건네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괜찮아...이게 편해.. 이렇게 앉아서 조는게 편해' 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아프지만 어쩌면 엄마 말은 진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앉아서 조는게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앉아서 조는 것에 익숙해진 엄마가 너무 내 맘을 아프게 한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을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이 다 읽을 공간에 풀어놓게 되는걸까? 어찌보면 나 혼자 생각하다 말면 그만인데...
아마도 내가 엄마 생각땜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얕은 계산에서인걸까? 내 맘을 남에게 보이고 싶은 걸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엄마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이나 죄송스러움을 면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오늘은 상추쌈 친구인 미현이와 통화를 했다.
이 사이트에서 첨 만난 친구들... 이젠 오랜 친구처럼 뭐든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내 친구들... 오늘같은 날, 그 친구들이 무척이나 그리웠는데... 전화를 하면서도 난 내내 그 친구의 안부만을 물었다. 전화통을 붙들고 한참이나 지껄이고 싶은 얘기들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참 이상한 날이다.
내가 우울하니깐 괜스리 남편한테 투정을 부리게 될 것 같았다. 토요일 오후는 우리 부부에겐 참 피곤한 날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토요일은 일주일의 일과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곤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내가 돌이켜보건대, 결혼이후 우리 남편과 내가 다투거나 한 날의 거의 대부분은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왜??? 피곤한 날이니까. 아마도 서로 피곤하니까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작은 말 하나에도 다툼이 일어나기 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먼저 구원요청을 했다.
3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한잔씩 사서 마셨다. 말없이 하던 일을 접고 나를 위해 5천원짜리 커피를 사주는 남편이 참 고마웠다. 난 나름대로 터득한 게 있다. 만약 삶이 짜증이 나려고 할 때는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투정을 하기 전에 남편에게 구원요청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을.
'나 오늘 우울해...' 하고 얘기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요청하는 것이 괜히 꿍~ 하고는 있다가 내 맘 몰라준다고 섭해하는 것 보다 나의 정신건강과 부부의 애정전선을 위해 좋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대추술이나 한잔씩 하고 자야겠다.
많은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