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공부를 열심히하고, 성실하면 그것으로 평가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줌마가 되고보니 신문 읽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보다,
집안 반짝반짝하게 닦고, 김치 잘 담그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평가 받는 걸 보면서 슬퍼진다.
아줌마의 최고의 가치는 걸레와 김치맛으로 평가받는 이 현실이 슬프다.
내가 딸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때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대우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직도 딸만 가진 엄마는 시댁에서 할 일 못한 죄인 취급받을때 참 슬프다.
이런 진보적인 아줌마닷컴에 조차 아들낳으면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말하는 아줌마가 있는 한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나를 슬프게 한다.
고3시절 야간자율학습하면서 돌아올때 아 ..우리나라도 이런 입시제도가 없어질꺼야 하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내아이는 나보다 휠씬 더 많이 과외를 받아야하고, 점점 더 입시제도는 어려워 질때
아줌마들은 슬퍼진다.
우리 어렸을때 2000년이 되면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된다고 했다. 그때 흑백텔레비젼으로 보던 서울 사람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아파트 평수로, 나온 학교 수준으로 , 다니는 직장으로 점점 더 사람들을 나누고 끼리끼리 모이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 아웃사이더에 내가 속해 있음에 어쩔 수 없이 속상해 하면 슬퍼진다.
신문에 울부라이터나 핀란드 여자대통령 이야기가 나올때면 우리나라도 곧 이런 세상이 오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데 장관이라는 사람이 외교파트너를 성적파트너정도로 취급하는 발언을 보면서 한국은 정말 멀었어, 가망이 없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슬픔에 빠진다.
신문에 방송에 러브호텔이니 룸살롱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남의 이야기 보듯이 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 남편의 와이셔츠에서 립스틱자국을 발견했을 때 절망의 슬픔을 느낀다.
왕따니, 학교촌지 문제니 하는 문제는 그저 신문에서 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아이가 선생님께서 자기가 미워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학교 다녀온 날 아이가 선생님한테 칭찬받았다는 이야기에 선물을 들고간 내 손을 쳐다보며 한없이 슬퍼진다.
세상은 왜 이리 우리를 속이고 슬프게 할까요??
남의 경제적인 풍요로운 자랑거리를 졸부근성이라고
치부하고 싶고
남의 건강함은 보약과 일하지 않아도 되는 팔자좋은 여편네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고,
남의 출세는 줄잘서고 배경좋은 탓이라고 이야기하고,
남의 성공은 운이 좋은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안되는 것은 모든 것이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하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자기르 속이며 살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