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내서 공부 가르치던 아이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그 집은 아저씨 공부땜에 미국서 꽤 오래 살다온 사람들이다.
욕실에는 으례 있을만한 외제 향수나 화장품은 보이지 않고,
대신 아이들을 위한 좋은 영문글귀들이 작고 소박한 액자에 담겨져
있었다.
손수 만든 몇가지 요리가 커다란 쟁반에 담아져 나왔고,
그 집 아이들은 엄마를 도와 셋팅도 하고, 새파랗게 싹을 낸
당근을 유리잔에 담아 나를 위해 준비했다고
식탁 가운데 놓아 주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주 근사한 저녁 식사였다.
그날처럼 특별한 메뉴가 아니더라도 늘 이런 분위기로 식사하는 것 같
았다.
언젠가는 다 떠날 아이들인데 이렇게 함께 식사할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한끼 식사만큼은 꼭 이런 분위기에서 나눈다고 했다.
남의 집에 와서도 돌아서서 신정리를 하고( 그 날따라 신은 왜 그리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지 ), 현관 앞 까지 태워 준데도 굳이 아파트 정
문 입구에서 내리기를 단호하지만 예의 바르게 고집하는 그 집 딸아이
의 행동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평소 식탁에 앉기를 거부하던 세 살난
내 딸내미의 행동이었다. 예쁘게 꾸며진 식탁에 다소곳이 앉아 젓가락
질까지 흉내내는 것이었다.
아침도 각자,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마저도 기껏 차려 놓으면 신랑은
소파에 누워 신문이나 TV를 보며 열 댓번은 블러야 들은 척하고, 기다
리다 짜증 내며 혼자 먹기를 반복하는 우리 집 식사문화를 떠올려
보았다.
맞벌이를 핑계로 모든 것을 대충대충 떼우고 집에서는 그저 편한게 제
일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 왔었다.
남편과 함께 가족만의 작은 문화를 만들려고 늘 고민한다는 아줌마
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어제는 밥상 다 차렸는데 소파만 뭉개고 있는 신랑에게 한마디 했다.
이젠 밥상 차리기 전에 자리에 안 앉아 있으면 밥 안주겠다고. 그리
고 오늘은 수저라도 같이 놓자고 제안할 것이다.
남편과 딸내미와 함께 거지같은 찬이지만 황족처럼 우아하게 먹게 될
그날을 위해 나도 이제 새로와 져야 겠다. 내 삶의 질을 한단계 더 업
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