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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류와 주방세제, 속살의 색깔이 너무같죠? 그래서 생긴일.


BY 작은난초 2000-11-27

어릴적, 사정이 있어 할머니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작은몸집에 몹시도 바지런하셔서 명절이면 많은음식을 혼자

서 만드시곤 하셨다.

노랗게 튀겨져 조청으로 옷을입히고 깨를 솔솔뿌린 약과,

며칠전부터 누룩을 빗어 아랫목에 익혔다가 맛을낸 동동주 (내 결혼

식 폐백때 시이모님이 한모금드셔 보시고 혼자 큰소주병으로 한병을

다 드셨음)

큰 가마솥에 장작으로 불을 때며 주걱으로 정말 팔아프게 저어야만 완

성되는 핀엿, 흰깨,검은깨를 번갈아가며 돌려 멋을낸 깨강정, 들깨강

정,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유과.

우리는 이 유과를 산자라고 불렀다.

이 산자는 만드는 과정이 정말 복잡했다.

먼저 찹쌀반죽을 조금씩떼어 방망이로 밀어 네모나게 만들어 방안가득

히 널어 꾸들꾸들 말린다.그리고 장작불을 때며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서 거기에 식용류을 부어 말린 산자를 숟가락으로 쭉쭉펴가며 부풀린

다. 여기서 잘못하면 산자가 바삭거리지 않고 딱딱해서 정말 맛이없

다. 그리고 튀겨진걸 보관했다 명절즈음해서 튀밥튄걸 가루를 내어

조청을 입힌 산자에 입힌다. 그러면 완성.

그런명절을 앞둔 어느날.

부엌과 벽하나를 둔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냄새가

자꾸난다. 고무탄냄새인지 지금의 락스같은 냄새.(그때는 없었음)

그리고 화난 할머니의 목소리에 부엌문을 열어보니

`아야, 이게 왜이리도 안튀겨 진다냐. 늬이 작은아빠가 사온 식용류

인데 영 못쓰겠다야. 아무래도 올해 산자는 다 먹었나 보다.`

에구머니, 그건 식용류가 아니라 세제였다.

그 당시의 주방세제는 지금의 퐁퐁밖에 없었다.

그런 하얀색의 퐁퐁만 보다가 그때 태평양화학에 다니던 작은아빠께

서 샘플로 처음으로 속이 훤이 비치는 세제를 몇병 할머니를 가져다

주신거다. 그러니 글이라곤 처녀적 야학몇번 나갔다가 할머니 아빠

께 몰매맞고 그만둔 할머니가 세제와 식용류를 헷갈린건 당연지사.

그 해의 산자는 그때버린 절반의 산자로 인해 귀할수밖에 없었다.

그후로도 할머닌 읍내라도 나갈라치면 집에오는 버스를 누구에게 물어

보는게 창피하다며 70세의 연세에 내게 글을 배우셨다.

하얀 달력의 뒷면에 글을 쓰시고 이름과 지역을 공부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80이 넘으셔 명절에 가도 그 많은 음식을 못하시니 식구들이

섭섭하다며 할머닌 안타까워 하신다.

할머니, 그거 안먹어도 좋으니 제발 관절이나 허리 아프시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며칠있다 할아버지 제사때 트라스트 또 박스

로 사가지고 손자사위랑 뵈러 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