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오기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큰 아이로 인해
알게 된 아이친구 엄마가 있다.
잘 나가는 남편덕에 남 부러울것이 없던 그녀는 아이 학교다
학원이다로 꽤 열성이지 싶었다..
그당시 소 그룹으로 글짓기하는 과외가 극성일땐데 마침 아는
후배가 그 회사 글짓기교사를 하며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명문(?) 여대출신에다, 미혼이며...
똑 부러지는 학습방법과 휴일날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견학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파여서인지, 그 아파트 엄마들은 글짓기
회사에 전화해 그 선생(후배)과 연결해 달라고 하며, 대기하고
있는 팀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초등 2년이던 큰아이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일기도
제법 잘쓰고 표현력도 있는것 같아 글짓기 과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후배는 우리 아파트에 수업이 있는 날, 수업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우리집에 와서 차를 마시고 가기도 했는데, 어느날인가
그녀의 눈에 뜨였는가 보다.
후배와 나의 친분관계를 앞세워 자꾸 글짓기 팀을 만들어
함께 하자고 얼마나 자주 얘기를 하던지 나중엔 그녀의 끈질긴
제의에 두손을 들고 또래 4명을 만들어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아인 딸이었는데 항상 여리고 갸냘퍼 보였다.
엄마의 극성으로 여기 저기 안하는 과외가 없고 그 어린것이
얼마나 공부에 시달렸으면 원형탈모증 증세까지 보여 안타깝게 했다.
몇차례인가 그녀에게 아이가 하는 과외를 몇가지 줄여보라고
넌지시 얘기했지만 나름대로 계획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그야말로
쇠귀에 경읽기 라고 해야할지, 아님 나름대로의 확신에 찬물을
끼얹는 방해공작에 지나지 않는지..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 후배는
글짓기 수업시간에 동화구연식으로 역할극을 하는데
각자 주어진 배역대로 연습하고 녹음을 해서 엄마들에게 들려주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듣고 헤어졌는데...
느닷없이 그녀가 다음날 전화해서 격앙된 목소리로 글짓기 수업에서
자기아이는 빠지겠다고 한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자초지종 이유를 물어도 시원스레 말이 없고
무작정 빠지겠다고 하니 난처해지기까지 했다.
며칠후 집으로 찾아온 그녀는 동화구연 역할극때 자기아이의
배역이 너무 보잘것 없었고 대사도 몇마디 없어 가뜩이나 그 그룹에서
자기아이가 쳐진것 같아 속상했었는데, 선생이 배역까지 그렇게
주었나 싶어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였다.
내가 듣기론 우리아이 대사도 많지 않았고 다 거기서 거기같아 보였
는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말라고 하였지만....
후배도 그얘기를 듣고는 많이 속상해 했다.
어쨌든 그 수업은 다른 기다리던 다른 아이가 들어와 끝을 맺었지만
영 개운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후 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되었고 직장도 다니게
되었다.
까마득한 기억속의 그녀였는데...갑자기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어찌 어찌 수소문해 내 핸드폰번호를 알았고 찾아오겠다고 했다.
특별히 친했던 것도 아니고 수소문해서 찾아올만큼 친분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의아했지만...
근 오년 만에 만난 그녀는 예전과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남편이 보증을 잘 못서는 바람에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다시피 했다는 얘기를 하며 그간의 힘들었던 생활을 들려준다.
........ 난 아무말도 못했다...
그녀는 00펜인가 영업사원일을 하면서 지금은 꽤 벌이도 괜찮다며
이렇게 찾아온것이 실례가 아닌가하고 묻는다..
나는 그랬다..
어찌됐든 기억속의 그녀는 좀 별나고 사치스럽고 그랬지만
현재의 그녀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현재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보였다.
마침 작은 아이 학습지를 해야 할까보다 하고 생각하던 차에
신청을 하고 다른 필요한 책도 2질을 구입하였다.
고마워하는 그녀에게 어줍지 않은 위로의 말은 할 재주가 없는
내성격이 한심스러웠다.
추운 날,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예전의 그녀와 오버랩되면서 지금의 그녀가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