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 결혼한지 3년 되던 해, 내게 명절은 참 재미없는 날이었다. 제사 모실 일은 없지만 자식들 다 커서 분가시키고 사는 터에 명절을 밍밍하게 보낼 수는 없다고 어머님은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하셨다. 빈대떡을 부쳐도 몇 채반 씩 해 내는 친정의 명절일거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갈비찜에서 나물 몇 가지까지를 마련하는 일은 양이 적다고 볼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일을 나는 어머님과 둘이 했다. 며느리가 둘인데 형님은 약국을 하셔서 바쁘다는 이유로 명절 당일 아침에 오셔서 설거지만 하셨다, 약국도 명절이 대목이란다. 또 남편은 낮잠을 자거나 그 동안 못 본 친구들 만난다고 나가서 새벽에나 들어오고, 말씀이 별로 없으신 어머님과 둘이 부엌일 하는게 지루하고 싫었다. 명절이 되면 한 20명 씩 모여 북적거리고 먹을거리가 진진하고 시끌벅적한 친정이 지척인데 하는 생각에 더 심통이 나곤 했었다.
다음날이 추석이었다.
송편 빚을 쌀가루를 한 쪽으로 치우고 우선 부침개나 다 마치자고 서둘고 있는 참이었다.
아버님께서 들어오시더니 그 전해에 돌아가신 친구분 성묘를 가자셨다. 일가는 아니지만 막역하게 지내시던 분이신지라 생각이 난다시며 가자고 서두르셨다. 낮잠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우시고 어머님께도 어서 차비를 하라셨다. 어머님은 '일거리를 두고 어딜 가요.'하시면서도 지금 안 가보면 언제 또 시간내기 쉽겠냐 시는 아버님 말씀에 망설이시는 기색이셨다. "너도 갈래?"어머님은 괜히 내 눈치를 보신다. "아니요, 저는 .." 나는 명절 전날의 지옥같은 교통망을 뚫고 한시간도 넘는 시 외곽의 공원묘지를 다녀오느니 차라리 혼자 집에 있겠다고 각오했다.
"제가 부침개랑 송편 다 마무리하고 있을게요 다녀오세요 어머님."
나는 무슨 변덕이 났는지 혼자서 오히려 신나고 재밌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이시는 어머님 등을 밀었다. 명절 전날 혼자서 썰렁한 시댁 부엌에서 일한다는 게 처량맞게도 생각됐지만 잘했다 싶어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님이라고 외출을 못하실 이유가 없다는 대견한 생각을 다 했다.
부침개야 뭐 하던 일이니까 그럭저럭 마무리 짓고, 송편 차례였다. 쌀가루를 익반죽하고 소(어머님이 참깨로 만들어 놓고 가셨음.)를 넣어 빚으면 쪄 낼 일만 있다 이거지, 그럼 시작을 해보실까. 그런데 익반죽이라는 게 보기는 많이 봤는데 만만치 않았다. 너무 물을 많이 부었다. 아차 싶었다. 너무 질어서 만지기 어려웠다. 순간 밀가루가 눈에 띄었다. 에라 모르겠다. 반죽에 밀가루를 넣어가면 치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되다 싶었다. 또 물을 넣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느낀 두려움(?)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쨌든 반죽이 됐다. 빚었다. 우리 어머님 송편은 강원도식이라는데 작고 단단하고 손 자국이 살짝 남는게 이쁘다. 그래서 그 전에도 시댁에 와서 송편 빚을 때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혼자 하려니까 어떻게 했었던 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송편은 점점 만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만두는 내가 좀 잘 한다.히히 그런데 이번에는 소가 부족했다. 밀가루 넣고 물넣고 하는 사이에 반죽이 많아진게다. 친정에 전화를 했다. 숙모님이 받으셨다. 나는 친정엄마가 듣기라도 하실까 싶은 목소리로 상황을 말했다. 숙모님은 큰 소리로 웃으시며 '밀가루를 넣으면 어떻게' 하신다. 왜요? 밀가루로 떡 만들면 찐빵되지. 그런가? 하여튼 그건 그렇고 소는 어떻게 만들어요? 참깨랑 설탕이랑 어쩌구 하는 방법도 있고, 돈부를 어떻게 하는 방법도 있고 녹두를 어떻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쨌거나 나는 참깨에 도전했다. 왜냐하면 어머님이 눈치 채지 못하시게 같은 걸로 해야 하니까. 간단했다. 소를 다 만들고 떡을 빚었다. 이번에는 소가 남았다. 처리는 간단했다. 다 먹어버렸다.
떡을 다 빚어서 쪄냈다. 김이 훅 올라오는 시루 뚜껑을 열면서 왠지 와 성공이로구만 싶었다. 젓가락으로 찍어 하나를 먹었다. 뜨거운 것이 말랑말랑하게 맛이 있었다. 이만하면 됐지뭐. 나의 비밀 공작은 영원히 비밀이 될 것이다. 흐믓했다.
그런데 참기름에 굴려 보기 좋게 (물론 만두같이 못생기기는 했지) 소쿠리에 담았는데 이게 식으면서 딱딱해지는 거였다. 밀가루의 본색이 드러나는 찰라였다. 곧 돌아오실 시간이 되었는데, 초조함이 나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용감하게 나는 소쿠리에 있는 떡을 다시 쪘다. 찌면 말랑말랑해지니까. 그런데 두 번째 쪄서 냈는데도 안오셨다. 길이 많이 막히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나는 떡을 밀폐용기에 넣어 뚜껑을 닫았다. 식으면 안되니까.
그 당시 나의 심정을 짐작하시겠는가. 나는 공연히 빨래니 청소니 급하지도 않은 일들을해치웠다. 신경은 오로지 떡에 가 있었다.
저녁 때가 다 되어 오신 아버님은 출출하다시며 며느리가 빚은 떡을 찾으셨다. 내가 접시에 담아 드리기도 전에 부엌으로 들어오셔서는 떡이 어딨냐 하신다. 뚜껑을 열고 떡을 집으셨다. 미처 다 식지 않은 떡들이 호로로 김을 올렸다. 떡이 아버님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긴장이 됐다. 표정은 어떠신가. 뭐라고 변명을 할까. 아버님은 아무 말씀 없이 또 집어 드셨다. 몇 개를 그렇게 드시더니 맛이 좋다고 하신다. 녜에... 아버님이 나가시고 나는 떡을 집어 먹어봤다. 아까부터 내가 먹은 떡만 다 해도 한 소쿠리를 내가 다 먹은 것 같다. 밀가루 세례를 입은 떡의 배신은 여전했다. 떡 맛은 숙모님 말씀대로 찐빵을 닮은 것도 같고, 두껍기만 하고 맛없는 파전같기도 했다. 어머님도 떡을 드시고는 수고했다고 하신다. 참 나, 어머님께서 맛이 다르다고 물으시면 자수하려고 했는데.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반나절 혼자서 부엌일하느라 애썼지야 하는 말씀을 귀따갑게 들으면서 차라리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술맛이나 알지 떡 맛을 모르는 남편은 그저 마누라의 솜씨에 탄복하는 시늉을 했다.
그 떡을 다 먹지 못하고 나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그 일이 있고서 나는 그 동안 무성의하고 심통부리듯 해 온 명절 부엌일에 조금은 더 성의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어머님이 옆에 계셔서 참 든든하다. 어머님이 계신한 더 이상 밀가루 송편 같은 실수는 없을게 아닌가.
내일 나는 명절 쇠러 시댁에 가려고 한다. 그래서 그 웃기는 송편사건이 생각난 모양이다.
저같은 며느리 거두시는 우리, 아니 대한민국의 어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