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입니다.
저는 여늬 학부모처럼 새벽밥을 짓지 않습니다,아니
정확히 말해 못 짓습니다.
쌀이 떨어졌냐고요?
아닙니다.
아이가 아침에 등교하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 무슨소리냐고요?
네에!!!!~~~~~~~~~~~~~~~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 5월이었습니다.
아이는 구내 모 인문고교에 입학을 해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끔 다리가 몹시 아프고 피곤이 겹쳐 결석을 했던 것 외에는................
그런데
그 가끔 아픈 게 문제 였던겁니다.
급한김에 담임핸드폰에 문자메세지 보낸게
선생눈엔 거슬렸던 게죠.
게다가
스쿠터를 타고가다 사고를낸 학부모인 저도 못미더웠던게고요.
같이 누워 앓고 있는걸
특별 가정 방문을 해 문 손잡이를 뜯어 가면서까지
확인(?)을 했으니 그럴수 밖에요!
파손비도 보상못받은 문손잡인 저희가 몇천원을 주고 새로 구입해 재장착을 했죠.
선생말은
"아이는 쌩쌩했으며
아이어머니인 저는 과잉보호를 하며
자기학교의 규칙상 장기 무단결석자는 퇴학"이라는겁니다.
저는 말싸움에 지쳤고 제 아이는 마침 그 학교에 다닐 의욕을 잃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이의 일로 교실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단 한명도
제게 인사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아이의 사물함에 넣어 놓았던 교과서와 노우트 몇권은
여러 아이들의 책상 서랍속에서 발견되었으나
아이들은 그것들을 제 아이에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학기가 끝난 후인 지금까지도.
개인 사정으로 출석하지 않는 아이의 사물은 학급아이들이
나누어 사용해도 부관하다는 학칙이라도 있는건지.................................
병상에 누워있는 제게 한 아파트에 사는
제아이의 어릴적 모습이랑 닮았던 한 살 어린 급우가
자퇴서를 불쑥 내밀었었습니다.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학교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제눈에는
그학교 그반 아이들은대부분이 절도범이 될 소질이 충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다만 기회가 안되어서 안하고 있는 ,마치 폭탄 같은 존재 들로 느껴졌으며
담임마저 할수있으면 해보라고 묵인해 주는 것 같아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 교무선생님과 대화를 나눠 아이의 상황설명을 하자
관계자들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제게 학부모의 지격이 없는 것처럼 단언하거나,
장기 결석하는 아이의 교과서와 노우트를 급우들이 가져다 볼 수밖에 없는
교실내 상황을 인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담임에게 학부모가 요구하기 이전에 ,자신의 약속으로
집가까운 아이편에 보내 주겠다는 수차례의 약속을 어긴채,
결국은 다른 급우들의 책상서랍속에 있는 것을
학부모가 발견을 했어도 가져갈 수 없이 되어있는 상황에 대한
단 몇마디의 변명이라도 있었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제 얘긴 즉슨.
단지 '제 불찰입니다,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라는 몇마디 말로는
해결된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제 아이의 교과서와 노우트가 제 아이에게 돌아와야한다는 겁니다,제말은.
설령 기명이 안되어 있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아이의 서체가 확실한 문자들이 노우트와 교과서에 부기되어있는데..............
결국
담임 및 학급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절도를
조장내지는 독려하고 있어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요....................
저는 아이가 혹시
"쌩쌩"할지라도
아이가 "그 학교 아니면 안다닌다"고 할지라도
자퇴를 시키기로 맘을 굳혔습니다.
또 무엇을 눈 번연히 뜬 채 앗길지 알게 뭡니까?!
제가 어릴적
생쥐떼에게
아버지의 귀한 지폐더미를 갉아먹힌적이 있습니다.
온데 간데 없어진 지폐더미로 인해
제일 연장자인 할머니까지도 반 미쳐버리셨었습니다.
'혹시나 내몸에 있는지 보라'시며
벌거벗고 마당에 서 계시던 그 모습을 돌아가신지 29년이 된 지금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몇 날 이후 오락중이시던 할머니 친구분들과 함께하던 방의
길 쪽으로 난 창호지창을
쑥 뚫고 들어오던 비수를 절대로 못있습니다.
어떤 불한당 놈이 그런 끔찍한 짓을......................
그 이후 저희 가세는 기울어졌고 변두리로 이사를 했으며
저희들은 모두 식사를 한 밥상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반찬에 일곱 개의 숟가락이
한그릇의 찌개남비를 들낙거려야 했습니다.
당연히 눈치 싸움이 벌어졌지요.
그러나 둔한 저는 눈치를 볼줄몰라
급기야는 밥상이 엎어지는 사례가 빈번해지곤 했지요.
그렇게
생쥐의 장난감으로 둔갑한 지폐의 위력은 서서히 나타나더니
이제와서는
저를 이 사회의 최하위 경제계층으로까지 전락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삼학년이 되어서야 도둑질이란 단어의 행위를
첫대면 했습니다.
한밤에 뒤뜰 장독을 훔치러온 도둑과 맞닥뜨려서야였습니다.
저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서있다가 "카알~~~~~~~~~~~~~~~~~~~!"하고 외쳤었지요.
그러나 그것 뿐이었습니다.
도둑은 자전거바퀴를 굴리며 제 눈앞에서 사라졌읍니다,유유히.저희집 항아리를 싣고.
그 외에도 방금 세탁을 하여 물이 뚜뚝 떨어지는 새바지를 빨랫줄에 걸어놓고 들어와
방안에서 창밖으로 내어다보니 '없더라"
그겁니다.
귀신이 곡할 일을 당한거지요.
그래서 잃어버린 벌로
저는 그다음날 아침에 얇은 니트 스커크를 입고 학교엘 가야했으며
저의 어머니는 밤새워 그 니트치마를 짜셔야했읍니다.
졸지에 "니트스커트제조기"와 "꼬마 멋쟁이"가 된거지요, 염치불구한 도둑님 덕분에.
그런저런 일들로
절도범들에 대한 인식이 별로 유쾌하지 않던터에
아이의 급우들의 '떼도둑질"의 대상이 바로 "내 아이"가
되고난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가장 집 가까이 산다던 애 마저도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제
아이의 소지품을 넣어두고 있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학교 교감선생님의 '그까짓 교과서 따위가 아닌 더 큰 것을 제게 상의해주십시오..........."라는
소리는 이미 제 귓바퀴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가
내아이가 다니던 고교에로의 마지막 전화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시간
알토란 같이 예쁘던 내남집의 아이들이
발걸음 토닥이며 정문으로 다가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이젠 훌쩍들 커버리고 그네나름의 멋을 부리는 청년들로 변했지만
그래도 귀염성있는 때묻지 않은 얼굴들일것입니다.
이젠 실망을 해버린 이 아줌마가
그네들의 등하교길에 나타나지 않음을
아무도 의문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아이의 등하교길에서 만나는
그 아이들을 보는 것은 저의 희망이고 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다릅니다.
그들의 검은 손이, 그들의 검은 마음이
그들의 앳된얼굴보다도, 그들의 청량하나 쇳소리섞인 음성보다도
먼저 제게 다가옵니다.
"아줌마,조심하슈~~~~~~~~~~~~~~~~ 우리는 댁내의 간이라도 빼내갈수 있다우~~~~~~~
히히히!"라는 소리가 마음속으로 밀쳐들어옵니다.
아무도 그런말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더 이상
도둑놈들과 함께,
더 이상 도둑을 기르는 선생님들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의 '도둑질에 대한 무관함'에 내 아이마저
물들게 하고 싶지가 않아
용감히 자퇴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으며
그 학교가 아닌 타 학교에의 선택에 동의하였습니다.
아이는 이제 직업인들과도, 아버지 어머니정도의 연령을 지닌 분들과도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할 겁니다.
이번 일요일이 입학식입니다.
그 학교는 일요일에만 학교를 갑니다.
지난번과는 정반대로
나의 아이가 가장 낮은 연령을 소유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전부 동등하지요.
아이는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를 접할것입니다.
제발 아이의 인생살이에 좋은 영향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위인전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본보기들로.............................
마냥 치마폭을 감싸고 도는 아이가 아닌
굳건한 발디딤을 할 줄아는 청년으로 자라날 수 있겠지요, 많은 건실한 학우들 덕분에...........
자못 흡족하기 까지 합니다.
"대안학교"운운하는 마당에 이십여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통신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저희 모자가 되도록 해 주시겠지요?!
저는 검정고시를 치렀는데 바로 그 시험직후에 설립된 학교라고 들었습니다.
아이는 검정고시를 안 치러도 되니 한결 든든합니다.
학교가 썰렁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요.
오가는 길의 못된 인간들만 없으면 한학년 모두 무사진급이 아닐까요?!
어려운 환경들 헤치고 그 자리까지 가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밭이 될 학교이기를
두손 모아 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명철과 건강 주시고
좋은 친구를 가려 사귈 줄 아는 눈 갖게 해 주시고
나쁜 길로 가지 않으며
그 길로 들어서는 친구를 바른 길로 선도 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그로하여금 행복하게 하소서!
2001년 3월 9일 바람 센 아침.
한 아들애의 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