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일기
퇴근해오는 남편의 손에 네모난 물건이 비닐에
쌓여져 있는게 눈에 띄였다.
포장이 좀 불룩하다거나 하면 뭐 먹을껀가싶어 덤썩 받을껀데
보니까 척~ 한눈에 봐도 먹을거하곤 촌수가 먼거 같았다.
"이기 뭐신데?'
"알아 맞춰 봐라"
"하이구 그거 알아맞출 정도면 내가 여기 있지도 않지.
미아리 가서 벌써 돗자리 깔았겠다"
궁시렁 거리면서 받아들고 펼쳤드니 칠판 비스무리한
흰색 보드다.
"이거 뭣하러 사왔는데? 울집에 공부갈킬 아이도 없는데..."
"이거 주방앞에 걸어놓고 매일 좀 쳐다봐라.
맨날 까먹었다 핑계대지 말고...."
이히히~
그제서야 돌머리 회전이 되었다.
맨날 내가 까묵으니 메모하란 소릴 노래부르듯 하다가
그조차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니
아예 주방앞에 걸어라고 보드를 사온겨...
근데 그것까진 정말 눈물날만큼 고맙다만 이남자 왈
"그거 양쪽에 끈 달아서 목에 메고 다녀라"
"뭐?"
"니는 목에 안 메달면 그거 보는것도 잊어버릴거다"
세상에나...
아무리 내가 건망증이 심하여서 잘 까묵는다지만
인간적으로 이런 모욕을 줄수있남.
진짜 너무 한거 아녀?
개목걸이처럼 목에 걸어라니.....
"기분 나빠 못살겠네. 사주지 말고 그런소리 하지마"
또 입이 나오고 있는데 탁자위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보드연필과
보드 지우개가 눈에 뜨인다.
일단은 검은색으로 동그라미를 마구 그어서 낙서를 해보고
지우니까 쓱싹 잘도 지워진다.
하하. 요거 괜찮네.
그래서 남편 밥 다 먹을동안 그 옆에서 낙서를 했다.
꺼벙한 사람 얼굴 하나 그려놓고 '이도희남편' 해놓기도 하고
고추도 하나 그려놓고...히히.
울남편 밥묵다가 내한테로 눈을 팍 꼴신다.
"왜 눈 꼴시는데? 무섭구로.."
"이기 뭐야?"
"뭐 이거? 고추다. 당신 고추 첨보나?"
"이런~ 빨리 안지울꺼야?"
참나~~ 진짜 웃기는 사람이다.
고추 그림을 그려놓는데 뭔 요상한 생각을 하기에
저리 열을 내는지...
지우라고?
내 맘데로 그림도 못그리나. 흥~
그래서 그옆에다 고추를 하나 더 그렸다. 더 크게....
"이런 여자 봤나.."
"왜? 뭐땜시 그러는데? 난 이거 고추밭의 싱싱한
고추라고 그렸는데 그림도 내 맘데로 못 그리나?"
"어휴....알았다. 싫컨 그려라"
그리곤 쇼파에 가서 앉길레 보드를 들고 그옆으로 가 앉았다.
"당신도 함 그려봐라. 재밋다"
"일없다. 쓸데없는거 그리지말고 내일 할거 안잊어먹게 적어놓고
그거나 수시로 체크해"
근데..... 또 가만히 생각해봤다.
얼마나 까묵었으면 남편이란 사람이 이런걸 다 사올까?
고마운 마음보다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인생 벌써 종친거 아닐가?
남편 말마따나 내일 할 일 여기 적긴 적어놓았지만
그거 쳐다보고 체크하는것도 까묵지 싶은데
우짜면 좋을꼬? 흑흑.....
남편일기
문방구 옆을 지나는데 하얀색 보드가 눈에 띄길레.....
지나치다가 건망증 심한 마누라 생각이 났다.
매일 메모 하는습관을 들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길하는데
도통 듣지를 않기에
부엌옆에 이걸 두면 괜찮을꺼 같았다.
자신도 매일 치매 중증이라고 입버릇 처럼 말을 하니까...
근데 썩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다.
농삼아 목에 걸어보란 소릴했는데 그 때문에 그런가?
밥먹다 보니 옆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그단새 킥킥거린다.
뭘 적었나 싶어 보니까 적었는게 아니고 온통 낙서를 해놓았고
한쪽으론 고추를 그려놓았다.
순간적으로 '이노무 마누라가?' 란 생각이 들어서
쳐다봤드니 딱 정색을 하고 이건 전원일기의
일용이네 고추밭의 싱싱한 고추란다.
그러면서 그 옆에다 자꾸 고추를 그려간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지만 본인이 일용네 고추밭의
고추라는데 뭔 소릴 하나.
내만 싱거운 인간이 되버리지.
한참 그려나가든 마누라
"요건 울집 고추다"
그래서 뒷통수를 한 대 쳤드니 킥킥거리며 도망가버린다.
어휴~
저넘의 마누라한테 웃어야 하나? 성질을 내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