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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일여성, 우리의 모범???


BY 여자생각 2001-03-30

이 글은 한국남자유학생 "황금고래"님의 홈피에 실린 글들을 읽고
마음 속에 든 분노와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응답이고 해결노력이다.

남의 글에 분노해서 글을 쓰려니 내글도 함께 유치해지는구나, 걱정하던 차인데 아래에 올려진 남성분의 글을 읽어보니 결국 그렇게 오해받는구나 싶다. 사실은 아래남성분이 쓴 이야기,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선진국을 닮아가야 한다고 발버둥칠 필요 없다는 거다.

우리가 서로 대화할때 그저 보통의 평범하고 인간다운 생각이 서로 통용되는 정도의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의 인권과 자의식을 얘기한다고 해서 바로 여성상위, 여성의 세계지배를 이야기하는 것 아니고 (한쪽이 꼭 우위에 서야만 하는 것 아니니까), 독일의 몇가지 예를 든다고 해서 독일을 우러러 숭상하는 것 아니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는다는 게 곧 우리 한국이 최고라고 주장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보통의 생각. 내가 소중하면 저기 살고 있는 남도 소중한 걸 기억해야 한다는 "우리"에 관한 생각...

독일에 2년 유학한 남학생이 독일여자, 한국여자를 함께 몰아세우고 있기에 5년 된 내가 한마디 해도 되지 않을까하며 얘기를 시작했다. 뭐 햇수가 실력 얘기해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난 잽싸거나 눈치빠른 타입도 아니다. 하지만 썩 반갑게 받아주는 것도 아닌 이 나라에서 부대껴 공부하면서, 한국에 돌아가 어떤 모습으로 설까, 무엇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기에 한마디쯤 할 자격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얘기하는데 남의 나라 얘기 자꾸 해야하는거 나도 별로지만, 처음 동기가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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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원론적인 확인 하나. 오늘날의 독일문화, 그들의 생활습관, 사고방식은 일관되게 이백년 넘게 지속되며 발전해온 것들이다. 교육을 받고 정신적으로 깨어난 시민계급과 경제적 부를 이룬 상공업계의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이성적 사고와 기독교적 윤리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를 형성했고, 그 정신적 전통을 비교적 꾸준히 유지해왔다. 시민적 윤리규범이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기본적 사고를 이루고 있는 편이다.
100 여년 전에 강제적인 근대화를 이뤄야했고, 일본의 지배 아래서 그 근대화마저 우리의 능력으로 소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전쟁, 분단, 군사독재까지 겪어야 했기에 정신적 유산을 보존할 여유가 없었던 우리 근대사와 그들의 역사를 비교해서는 안될거다. 우리의 아픈 역사는 우리가 싸안고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가진 (출신성분이 다른) 남의 모습을 기웃거리며, 한국남자가 어떻구, 한국여자가 어떻구 해가며 자기 발등 찍어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 독일이라고 본받을 것만 가득한 나라인가? 독일여자는 그렇게 자의식 강하고 진보적인가? ...
독일의 시민적 전통과 문화는 지금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괴테, 베토벤, 칸트를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나이든 독일인들이거나 외국인들일때가 많다. 이곳도 비자금도 있고 뇌물도 있더라. 공룡덩어리처럼 비대해져 비효율적인 된 사회조직들의 문제, 또 흥미, 소비 위주의 젊은 세대들과 변화를 심히 두려워하는 구세대의 갈등이 해소되어야 하는 것, 이곳도 마찬가지다. 시민윤리의 근간을 이루던 전통적 가족개념이 해체되고 종교가 힘을 잃고.. 이런 현대 혹은 탈현대의 흐름 앞에서 독일인들은 이 흐름을 타고 더 빨리 진행해가느냐, 거꾸로 흐름을 돌려보느냐 고민하며 갈등하고 있는듯 하다. (이런 문제, 독일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독일여자라...
먼저 매력없기로 유럽에서 소문나 있고, 또 우리 외국인들 독일에 적응하는 시기에 제일 많이 맞닥뜨리고 비인격적 수모 당하게 되는 독일여성들의 장점만 골라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 있었던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고래님의 사고방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미 말했지만, 어느 사회나 그렇듯 고루고루 섞여있다. 남자들 성격 다양한 것 만큼 여자들 성격도 다양하게. 독일여자들이 탁월한 정치관과 적극적 발언을 보여준다고 관찰한 거,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정치에 관심없거나 말하기 싫어하고 주저하는 사람은 절대 입 안연다. 그래도 그런가보다 하고 남들도 잘 묻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학에 적만 걸어두고 괜찮은 남편감을 찾아 다니는 여학생들도 역시 있다.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어 자유롭고 적극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쉽게 동거 시작하지 않는다. 결혼이라는 의식을 치르지 않았을 뿐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거의 부부처럼 인정받게 되고, 서로 그만큼 애정과 책임감 유지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때 동거를 결정한다.
가정적인 여자들은 정말 적극적으로 가정적이다, 그만큼 독일남자들도 가정적이기도 하고. 보수적인 여성들은 또한 만만치 않게 보수적이다... 이런 예들 들자면 끝도 없겠다. (내 개인적 관찰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나 또한 고래님과 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지...) 한마디로 적극파에서 완전 소극파까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억눌려 있거나 주눅 든 경우는 드문 편인게 사실이다. 아무리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도 자신의 기본적 권리, 행동권한 등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다, 어려서부터의 교육의 결과인 것 같다.
보수, 진보를 나누는 잣대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점도 얘기하고 싶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결혼해서도 파트타임직이라도 유지하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하는 실용적 사고가 모두 진보적 사고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눈으로 볼때는 이곳이 전반적으로 진보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격차가 클 뿐 아니라, 독일여성들 스스로는 자기들이 유럽 안에서 진보화가 늦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카톨릭이 우세한 남부독일에서는 보수적 사고와 행동방식이 더 많이 남아있다.
독일여자라... 혹여 꼭 막히고 편협하고 약자나 외국인에게 정신적 심리적 폭력 행사하기를 즐기는 여성들(좋은 독일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런 사람 극소수 아니다, 당근 남자들도 있다)을 만나게 되면 정말 마음이 땁땁해진다. 스스로 트였다고 생각하는 속물적 여성/남성을 만날때도 마찬가지다.
쭉쭉빵빵? 그렇지 않은 사람 정말 많다.

아, 이런 유치한 얘기하려던 거 아닌데. 독일을 흉보려던 것도 아니고. (내 밥줄인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좋은 건 좋은 걸로, 배울만한 걸로 볼 줄 알되, 좋은 점 나쁜 점 골고루 볼 줄 아는 객관적 시각을 노력해 보자는 거였다. 남자,여자에 집착하기 보다 그냥 "인간"들을 보자는 거다. 무지막지하게 한국을 향해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는 말자는 거다. 서로 답답해질 뿐이다. 남성들은 뭐 한국여성이 독일여성처럼 되면, 독일남성들 역할 해주는 것 쉬울 것 같은가?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웃긴다)
한국여성을 철저히 비하하는 시각을 기본으로 해서 무조건 독일여성들을 그 반대에 갖다 앉히고 있으니, 졸지에 자의식 충만하고 자유롭고 씩씩해진 독일여성들도 벅차 보일 따름이다. 혹시 어찌 여성으로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느냐는 세계 만국여성 비하가 그 뒤에 숨어 있지 않은지 나는 심각히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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