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빛바래고 두껍고 무거운 10년전의 책이군요.
느낌으로 벽돌 한장의 무게가 나갈 것 같아요.
마지막 페이지가 735쪽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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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드 보부아르>
베르트랑 드 보부아르 집안
p17
시몬 드 보부아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온통 검은 색과 뒤엉켜 있었다.
평생동안 그녀는 어린 시절이 되살아날 때마다
검은 색으로 뒤덮여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검은색과 좌절을 결부시키는 첫 기억은
어머니가 입고있던 검은 드레스의 뻣뻣한 촉감이었다.
이 뻣뻣한 검은 옷 때문에 시몬은 어머니를 껴안으려 할 때마다
마치 장벽에 가로막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어른들은 천장이 높은 방에서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고, 아이들은 거기에 끼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어린 그녀가 혼자서 가지고 놀던 굴렁쇠도 검은색이었다.
시몬은 어머니한테서 정식으로 소개받은 상류층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아이와도 어울리지 못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다른 아이를 사귀려면 어머니가 먼저 그 아이의 어머니를 정식으로 만나야했다.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 인쿠르 데지르에 입학했을 때도,
이 엄격한 절차를 먼저 밟고 나서야 함께 등록한 소녀들한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어린애가3 살만 되면 명함을 갖는 사회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도 두껍고 하얀 종이에 검은 잉크로 글씨를 박은
화려한 명함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네 살도 되기 전에 까만 벨벳 핸드백 속에서
처럼 능숙하게 명함을 꺼내어 은 쟁반 위에 올려놓는 법을 배웠다.
시몬은 언제나 예의 바른 꼬마숙녀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녀는 조숙한 행동이 훨씬 더 어른들의 관심을 끈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지만, 예의범절과 허세의 경계가
어디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눈총을 받는 사회에서 그녀는 이따금
어머니에게 무안을 주었고,
이모나 숙모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곤 했다.
이것이 바로1908년 1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난 시몬이
첫 발을 내디딘 프랑스 부르주아지 사회였다.
그 사회는 예의범절과 세련된 품위의 세계였다.
부자연스러운 예의와 품위가 보부아르 가족의 온갖 생활을 규제하고,
일반대중으로부터 그들을 갈라놓았다.
가정의 규율은 엄격하고 완고했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뿐 아니라 바깥의 사교계와 정치계에서도
절제와 보수주의가 그들의 행동을 지배했다.
부르주아 계층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집안이 맨 처음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
돈을 어떻게 쓰느냐,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가 판단 기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은 결혼이었다.
일단 이 고상한 사회에 들어가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추방당할 염려는 없었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집안에서 은밀하게 벌을 줄 수는 있지만,
겉으로는 체면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 집안은, 재산을 탕진하고 그 결과 지위도 잃어버린
시몬의 아버지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시몬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달랐다.
보부아르 집안은 그녀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하게 둘러 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친척들은 시몬이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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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문화...에서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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