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마를 보면 세월이 느껴진다 - 고진하
그리마를 보면
왜 세월이 느껴질까
나무결무늬 장판 위나 빛 바랜 장미꽃 무늬 벽
위를 뻘뻘 기어다니는
암황색 그리마를 보면, 그녀는 질겁을 하지만
왜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쉴새없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릴까,
절족류,
노예선 속의 노예들이
뱃바닥에서 한 동작으로 노를 젓듯이
그 많은 다리로 뻘뻘 기어다니는 그리마를 보면,
시간의 노예들,
한계의 제왕들의 슬픔이
좀더 빠르고 좀더 많은 다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섭게 질주하는 고무바퀴들은
수만 년 진화된 다리?
하지만 그 바퀴들의 헐떡이는 혼魂은
퇴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도연명(陶淵明)이 한가롭게 거문고를 타고있는
옛 그림액자 뒤에서 기어 나와
전화기,
피아노,
오동나무 궤짝,
이철수의 판화달력 위를 뻘뻘 기어다니다
질겁을 하는 그녀의 손길에 쫓겨,
몇 달간 쌓아놓은 신문 철 위에 툭 떨어졌는데,
이런! 공항 귀빈실에서
달걀페인트 세례를 받아 피칠갑을 하고 있는 듯한
前대통령 일그러진 얼굴에 뭉개졌다.
문득,
그녀의 눈망울도 벌겋게 충혈된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뭉개진 그리마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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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문학사상사
시집제목 -- 잘익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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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모기가 있어여.
애앵!
모기 싫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