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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처부부 일기


BY 나의복숭 2001-05-09

강남에 볼일이 있어서 전철 타고 가는 도중였다.
디링디링~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때와 장소도 안가리고 울리길레
얼른 받았다.
'어머니 접니다'
자칭 대한민국 국방부 재산이란 아들넘 목소리였다.
반가웠지만 전철속이라 한낮의 조용함을 깨기가 미안스러워서
내 큰음성을 죽이고 조용히 대꾸를 했드니...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음성이 왜 그래요?"
애구 난 오나가나 질그릇 깨지는 소리로 크게
고함을 질러야 정상으로 봐주지 요렇게 조신하게 얘길하면
애비나 아들이나 어디 아픈줄을 아니....쩝

"아니다. 왜 뭔일있냐?"
아들넘한테는 전화가 안와도 걱정이고
전화가 와도 간이 철렁 한다.
손을 가리우고 내 딴엔 조심히 받는 전화인데
자꾸 아프냐는 소리고 말이 안들린다고 동문서답이다.
그러니 할수 있남.
군대간 아들넘하고 통화를 하는 어미음성이니
이해해주겠지하는 뱃짱으로 조금 큰소릴 냈다.

"안아프다니까...왜 뭔일때문에 그러니?"
돈도 없는 쫄병이 전화를 할땐 뭔가 일이 있을꺼란
생각에 약간 긴장을 했다.
"어머니. 기뻐해주십시요. 저 상병됐습니다"
"뭐 상병?"
하이구 인제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이 됐나보다.
근데 짬밥그릇수로 받은 계급장을 가지고 꼭 뭔
벼슬이나 한듯이 아주 씩씩하고 개선장군같은 목소리다.
"응 그래. 축하한다"

일병이나 상병이나 그게 그거겠지만
한계급 올라가면 고생 덜하고 제대가 좀 더 가까우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환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제 월급도 15000원으로 오르고요..."
어쩌고 저쩌고 아주 기분좋게 얘길하는데
전철의 금속음 때문에 들리지도 않는다.
할수 없이 전화를 끊고 혼자 싱긋이 웃었다.
아들넘도 상병된게 그리 기분 좋았나보다.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교에 합격됐을때도 저넘은 저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군에 가기전엔 하루 용돈으로 15000원 쓸때도 있는넘이
한달 15000원 받는다고 저리 좋아하니 역시 아들넘들은
군엘 가야 돈 귀한줄 알고 인간이 되긴되나보다.

남편과 저녁밥 먹으면서 나역시 상병도 무슨 벼슬이라고
"있잖아. 원이 상병 됐데요"
이번에는 아들처럼 내가 좋아서 큰소리로 글켓드니
이 남자왈
'침 튀겠다. 때되면 되는걸 뭐가 그리 세삼스럽냐"
별로 대수롭잖게 얘길하니 머쓱해질밖에...

어미 마음하고 애비 마음은 이렇게 틀리나?
그까짓 침좀 튀면 어때....
마누라 침은 약되는데...
"꼭 델고온 자식한테 카는 소리같네. 애 상병 됐는데
당신은 반갑지도 않아요?"
"어이구 스타나 됐담 구둘장 내려앉겠다"
정말 재미라곤 파리 고추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같은값이면 마누라가 좋아하면 같이 좀 좋아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꼭 사람말을 저리 김빠지게 만드니...
내동생같았슴 진짜 한대 콱 쥐어박았을꺼다.

내가 떫은 표정으로 인상이 바뀌니까
위로한답시고 한다는말.
"상병이면 인제 고생 다 끝났어. 걱정마"
참 나...
것도 위로라고 하고 있는지...
(꼭 바보 도 티는 소리같이 하네)

요새 라이프 싸이클도 션찮은데 말 잘못하다간
본전도 못찾을거 같아서 이미자 입을 닫아버렸다.
아~ 난 학실히 현모양처의 소질이 다분해.
왜이리 갈수록 착하기만 하지? 히히.
오늘 하루도 웃으면서 잘 보냈다.
인제 뼈타고 살이나 타야지...하하


남편일기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들이 상병이 됐다면서 무슨 대단한 벼슬이나 한듯
마누라가 침튀기면서 얘길한다.
인제 고생은 끝났는거 같아 안심이고 좀 있으면 병장될거고
그러면 곧 제대를 하겠지.
세삼스러운것도 아닌데 몇번이나 강조하는 마누라에게
그만하라고 했드니 대번에 데리고 온 자식같이 말한다고
입이 불퉁하게 나온다.
아들한테 너무 집착하는 마누라가 보기 안쓰럽다.
딸 셋낳은뒤에 얻은 아들이라 그마음 이해 못하는바도
아니지만...
그저 아들얘기만 나오면 싱글벙글이다.
저러니 어찌 아들. 딸이 꼭같다고 할수있을까?

아는 친구가 원자력 병원에 입원을 했다해서
문병을 다녀왔는데 눈물많은 마누라가
질금 찔끔 울면서 하는말.
'안아프고 사는것만해도 큰 복이다'
그래 복이지. 그걸 말이라고...
80키로의 거구였든 친구가 50키로로 초라하게
누워있는걸보니 부부가 서로 건강한것만도 얼마나
큰 복인지....
'너 건강하게 오래 살아'
모처럼 톤을 최고로 낮추어 다정하게 말했드니
금새 감격한 마누라.
'아이구 그라믄. 그라믄. 같이 오래 살아야지'
방금전까지 찔끔거리든 인상을 확 바꾸어서 웃는다.
이리 단순한 성격을 갖는것도 쉽지 않는데....
인제는 이것도 복으로 생각되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