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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아줌마가본세상-낙태


BY 아줌마 2001-05-12

[아줌마 눈으로 세상읽기] 낙태를 권하는 사회 광고




여성신문



아침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우, 짜증나 미치겠어.

아직까지 생리가 없는 거야.

이번에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미 세 번의 낙태를 경험한 이 친구는 남편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피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무슨 마음으로 남편이 그랬냐고 물으니까 “남편은 하나 더 낳고 싶은 거고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이거지”라고 대답한다.

아이가 한 명 더 있기를 바라는 남편은 이렇게 시시때때로 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피임을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부인인 내 친구의 몫으로 돌아간다.

만약에 친구가 또 낙태를 결행한다면 낙태 반대론자들은 내 친구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왜 여성들은 낙태하는가.

그 대답은 “여성을 둘러싼 모든 삶의 조건” 때문이다.

불평등한 남녀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될 수 없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에 역시 주체적으로 개입하기 힘들다.

피임할 수 없어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어머니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육아시설이 없어서 등등 낙태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여성들 을 낙태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그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정작 여성들은 낙태를 둘러싸고 자신의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뿌연 안개처럼 희미하고 어두울 뿐이다.

낙태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데만 시간을 할애할 뿐 어떤 조건들이 여성들을 낙태로 내모는 지, 여성들의 몸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얘기하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이 세상엔 낙태 반대론자와 낙태 찬성론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상 낙태 찬성론자는 없다.

그 누구도 ‘낙태 그 자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낙태를 주장한다고 해서 비난받는 여성들이야말로 가장 낙태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낙태를 단 한번 이라도 경험했던 사람들일수록 그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무조건적인 낙태 반대론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요, 낙태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우리는 여기서 실제 ‘그 경험 속’에 있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속단과 잘못을 보게 된다.

왜 여성들이 낙태하는가를 경험해보고 성찰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그냥 낙태를 반대하면 되는 거다.

그러나 여성들은 낙태의 경험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다.

내 친구는, 부인의 삶과 의사를 전혀 존중할 줄 모르는 남편 때문에 또 다시 낙태를 경험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사정들은 또 다시 파묻혀버리게 될 것이다.

여성들의 경험이 공론화되고 그것이 삶의 조건들에 반영되고 정책과 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 대책없고 공허한 낙태 반대론자들의 목소리와 비례해서 낙태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 이다.

진실로 생명을 존중한다면 ‘현재’살아있는 여성의 생명과 삶을 먼저 존중해야 할 것이며 그 여성들이 신중하게 생명탄생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진실로 원할 때에, 안전한 상황에서 생명을 낳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태 아의 생명을 가장 존중해주는 것일테니까.

강시현/웹진<@zooma>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