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하나의 동성명인을 알게 된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백주에 oo시청 옆에서.
oo 물류회사에 1970년대에 다녔던 저는
이번에 법원에 제출할 서류의 하나로
퇴직증명서를 떼러 갔답니다.
이름과 현주소를 말하고
잠깐기다리니
경력증명서라 씌인 서류가
컴퓨터에서 나오더군요.
정말 편한 세상이다 생각하며
다른 볼일로
성급히 차를 타고 가다가
괜히 한번 더 들여다 보고싶어져 봤더니..............
저는 1956년생이거든요?
700ooo-2oooooo라고
예쁘게 찍힌 숫자가 저를 기가막히게 했습니다.
나머지도 저를 기가 막히게 하긴 마찬가지!
oo점oo부서에 1988년부터 1991년까지 근무를 했다고.............
서류를 봉투에서 더이상 빼지도 못하고 집어넣지도 못한채
멍청한 모습으로 머릿속은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중의 벼라별 억울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저는 상당히 우스워지고
분노의 감정마저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수많은 날들의 억울함을 여기 다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가족들간에의 불협화음,협박,감언이설.....폭행,따돌림......
신원도 모르는 이웃들의 협박,감언이설,비웃음,그리고
수많은 불한당들로부터의 온갖 횡포,성희롱,성폭행........
................................................
만감이 엇갈리며
짓밟힌 내인생의 원인이라도 찾은양
정말 기가막혀버렸습니다.
그 많은 날동안 당해온
연세든 남녀노인들로부터의 희롱,웃음,우롱에서부터
저보다 가맣게 어린이들로부터의
희롱,우롱,그리고 여러종류의 폭행과
때아닌 선심공세들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여기 다 입력할 수 없을 만치
몰아치는 바람속의 등잔없는 촛불같기만해온 제 인생이
순식간에 파노라마가 되어 저의 눈앞을 지나갑니다.
여하간,
여러가지 일들을 다 마치고
공중전화로 시끄러운 지하철역에서
전화카드가 다될때가지 이야기를 한 결과,
1970년대 초반의 직원기록은 없어서
퇴직이건 경력이건 증명서 발급이 불가하며
더구나 임대매장의 것은 전무하다는 이야기.
결국 저의 착오도 그들의 착오도 아닌, 단지
임대와 직영매장중 어디에 근무했었냐는
차이를 확실히 하지 않아 생긴 요상한 증명서였답니다.
제가 손에 받아들고 나온 경력증명서는.......................
임대 매장에 근무햇던 저의 현주소와
직영매장에 근무했던 그 누구의 경력이 짬뽕되어버린...............
하하하하!
정말 이지 우연챦고 어이없는 일로
저는 저와의 동성명인을 한사람 알게 될판입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114에 물었지요.
그 oo점은 오늘은 휴일.
저보다 14세나 어린 연령의 한 여인의 과거 경력이
제게 들어와 있는지금..........
전 다시한번 씁쓸할 수밖에요.
어디서도 증명할 수 없는 저의 그 곳에서의 재직사실에.
임대 업체 조차 오래되어
주인이 사망을 햇는지 외국에 이주를 했는지도 감감이라는
oo물류회사직원의 설명에서 더욱 난감했었지요............
혹시, 저 북한에는 남아있나 모르겠네요.
제가 그 곳에서 ooo을 판매하여서
어느해인가 북한적십자단원들이 몰려와
다량으로 사가며 사진들을 찍어대었었거든요.
남으로 방문을 왔었던 기관원들 중에
카메라 소장자나 그 기과 어딘가에
보관이 되어있는필름이 있다면
그 중에 저의 얼굴 모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한가닥 희망...............
그 것이나마 있다면
1970년대초반에 그물류회사에 근무햇었다는 기록으로서
증명이 될 수있을것을............
하루중의 중요한 일처리가 이렇게 되고나니
정말 막연해지고마는 이 심정.
이런것도 남북적십자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는지..............
동성명인에의 우연한 정보입수와
재직에의 증명.
정말 얘기 안 할 수없는 하루였답니다.
200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