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같은 하늘아래 존재한다는 것이 내겐 더러 위안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 이상의 그 무엇도 서로에게 바랄 수 없는, 그냥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데서 위안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인연입니다. 가끔, 아직도 빛이 다 바래지 않은 그리움이 내 가슴에 비를 내리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법 견딜만한 평온을 찾았습니다.
지난 날 그 삶의 여울목에서 그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 아무런 슬픔 없어 좋았을까요? 그래서 우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한 적 있느냐구요?
아닙니다. 그것은 내 생에 있어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한 장이었어요. 그대는 예상치 못한 사이에 내 근처까지만 그렇게나 조심스레 다가왔고, 근처에서만 근처에서만 숨바꼭질하듯 맴도는 우리의 운명이 힘겨워, 나는 마음으로부터 그대를 떠나보내기로 했지요. 떠나보내기로 한 그때로부터 벌써 몇 해가 흘렀어요. 그래도 아직은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아니,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내 마음 깊은 곳 한 자리를 그대에게 내주기로 했나 봅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들을 수 있는 그대의 목소리, 그러나 듣지 않고 삽니다. 행여 그대가 먼저 손내민다해도 나는 내 안에 마련한 그대의 방을 들키지 않을 겁니다. 그대는 그렇게, 내 마음 깊은 곳에 마련해둔 작은 방에서만 소리없이 은밀하게 존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