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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써보는 이야기...


BY 꼬마주부 2001-06-09

이건 제가 작년에, 그냥 써봤던, 소설도 아니고 실화도 아니고, 그냥 끄적거린 글인데,...그냥 올려볼게요. 실화 아니니까 혼내지 마세요^^



내 친구의 혼외정사

내 친구는 외롭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1년도 채 되지 않은 어느날, 느닷없이 외롭다고 했다.
신혼 재미에 깨가 쏟아지다 못해 참기름 공장을 운영해도 모자를 시기에 외
롭다니.......?
"외롭다니? 니가 뭐가 부족해서 외롭니?"
"둘이 있다고 외로운게 가시는게 아니야. 나무가 담벼락과 함께 있다고 외
롭지 않은건 아니잖니."
"나무는 뭐고 담벼락은 또 뭐야?"
친구는 그냥 웃고 말았다. 말한들 너가 이해나 하겠냐는 표정으로.

며칠이 지났다.
"오늘도 외롭니?" 친구의 기분이 좀 나아져 있길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응. 외롭구나. 해와 별이 하늘에 있든 그게 무슨 소용이니."
친구는 물기가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해와 별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니?"
그러나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그 며칠이 지나는 동안 나는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
별을 했다. 내가 몹시도 사랑한 사람이라 나는 끝까지 그를 놓지 않으려 했
지만 그는 내가 몹시 사랑하는 만큼 몹시 지쳐있었다. 우리를 반대하는 나의
아버지의 성화에 그는 1년을 힘들어 했었다. 그도 끝까지 나를 놓지 않으려
고는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상처를 입었고, 나는 그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는 없었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 본인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주변환경
때문에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나의 아버지는 도대체 성공된 결혼의 조건으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
셨을까...

"너, 아직도 외롭냐?"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막내 이모와 술을 한잔씩 하고 집에 돌아가던 길
에 그 외로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너, 아직도 외롭냐구!"
"술 마셨니?"
"그래! 마셨다. 나 어제 그 녀석이랑 헤어졌다. 너무 힘들댄다. 나를 사랑하
는게 너무나 너무나 힘들댄다. 함께 있고 싶은데, 나만 있으면 행복하겠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랑 있어도 행복하지 않댄다. 야, 너가 뭐가 외롭
냐? 너처럼 순탄하게 결혼한 사람이 또 있을 줄 아냐? 친정부모님은 단번에
결혼 허락하셨지, 시부모님이 너라면 옥이야 금이야 하시지, 신랑 성실하지,
뭐가 부족해서 외롭다구 하냐? 뭐가 그렇게 외롭다는거냐? 외로운건 바로
나같은 사람이나 외로운거야. 외로운건 바로 나라구..."
나는 한참을 그렇게 지껄였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그가 나에게
얼마나 잘 해줬었는지도 몇차례 강조하기도 한 것 같다.
"그리구 말야, 걔가 얼마나 자상했는지 아냐? 걔는 여름 내내 구슬 머리핀
을 지 손으로 만들어서 갖다 바친 남자야. 그 기계만 만지던 손으로 구슬 핀
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봐. 그런 남자를 내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
겠냐고. 엉?"
"윤희야, 내 남편은 내가 머리를 잘라도 잘랐는지도 몰라."
금방이라도 바스러져버릴 것만 같은 친구의 건조한 목소리에 나는 확!하고
정신이 들었다.
"윤희야. 내 남편은 같이 길을 가다 내가 발을 삐끗해도 멀뚱히 쳐다 보기
만 해. 내 신랑은 버스를 탈 때 항상 먼저 올라가. 잠을 잘 때 등 돌리고 자
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한 곳만 보고 자냐고 해. 한 해가 다 가고 마지막 남
은 하루, 밤새도록 신년계획을 세워보자고, 설레임에 들 떠 말하면 잠이나
자자고 해...그리고, 잠자리에서 살을 부댓끼려 하는 쪽은 항상 나야. 이러고
도 내가 외롭지 않겠니."
친구는 수화기 너머에서 낮지만 분명한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윤희야, 결혼은 사랑이 전부가 아닌가 보다. 아무리 해가 따뜻하게 비춰주
고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인들 그게 무슨 소용이니. 나를 쳐다 보지도, 나를
배려하지도 않는 담벼락이랑 살고 있는데..."

그랬다. 친구는 결혼하고 달라진 신랑의 무관심에 점점 말라가고 있었던 것
이었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의 상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에
친구는 결혼 후엔 또 다른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 같
다. 그리고 나니 친구가 이해되었다. 외로웠겠구나. 둘이 있어도 혼자인 것
보다 훨씬 더 외로웠겠구나.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나와 헤어졌던 그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돌
아왔고 친구는, 친구는 그즈음 연락이 닿았던 결혼 전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 전 남자친구와 하루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결혼 전 남자
를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
에게서 채울 수 없었던 따뜻한 시선을 그렇게 해서라도 채우고 싶었다고 했
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한 번의 외도를 통해 조금은 그 외로움이
씻긴 듯 하다고 한 친구의 말이었다. 그 후로 그 결혼 전 남자친구는 만나지
않았고 남편에 대한 애정도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결혼이란 참 불가사의 한 것 같다. 금방이라도 바싹 말라 죽을 것 같았던
나무도 잠깐 바람을 쐬고 나면 다시 싱싱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다시 무엇 때문에 나무가 말라갈 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