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대중문화] '그 여자네 집'의 생생한 삶
요즘은 사극이 시청률을 주도한다.‘태조왕건’ ‘여인천하’ ‘명성황후’가 시청률 1∼3위를 차지하고 있다.이는 사극이 재미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나 시트콤 등 현대물이 침체에 빠져 채널을 사극쪽으로 돌린 측면도 강하다.
그런 가운데 MTV 주말극 ‘그 여자네 집’(김정수 극본·박종 연출)은 현대극의 구겨진 자존심을 홀로 살려내고 있다.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견인하는건 출연 인물들이 현실적이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멜로드라마들이 그렇듯이 이 드라마도 남녀 사랑얘기가 주축이다.여기에는 네 종류의 생생한 사랑얘기가 있다.
김남주-차인표 커플은 요즘 도시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자유와 자아실현을 추구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30세 전후 한국인을대변한다.부잣집 외동딸과 의무만 짊어진 가난한 집 장남의 결합은 그 자체가 갈등의 씨앗이다.김남주는 지금까지 ‘억울한’ 시집살이를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지만 사랑으로 결혼하고도 가부장적인 권위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차인표를 보면 앞길이 순탄할 것 같지 않다.
당당하고 지적인 커리어우먼이나 부잣집 딸 역을 해온 김남주는 이번엔 당당하면서도 허점이 많다.이 점이 강점이다.술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하는 등누군가 챙겨줘야 하는 덜렁이다.남자 후배의 엉덩이를 툭 치고 농담하면서일하는 김남주를 차인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김현주-이서진 커플은 리비도에 충실한 원초적인 사랑이다.성춘향과 이몽룡의 현대판 사랑이라 할 만하다.요즘 신세대를 인스턴트 사랑이라 말하지만이들에게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이 엿보인다.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신세대의 지지를 받는 것은 물론 구세대에게도 청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힘이 있다.
고아 출신으로 전자회사 수리공인 이서진에게서는 요즘 여성 사이에 인기있는 남성상이 보인다.김현주는 자신과 신분차이가 많이 나는 이서진을 집안에 소개하지 못했다.자신과의 약속을 못지키고 다른 남자와 맞선을 보고온김현주가 춥다고 하자 웃옷을 벗어 입혀주는 이런 남자를 어느 여자가 마다하겠는가?이아현-박상면 커플은 최근 늘고 있는 이혼여성의 재혼을 다뤘다.박상면형의 집에 얹혀 살며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이아현의 모습도 끝까지 현실적이었으면 한다.
허영란-윤태영은 김정수 작가가 ‘측은지심 커플’로 이름지었다.고아인윤태영과 약간은 모자란 듯한 허영란의 짝짓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한숨을 돌리게 된다.
드라마는 이 네가지 사랑이 세대간,고부간,사돈간 갈등과 맞물려 한 물결안에 흘러간다.이런 갈등을 극복하는 힘은 사람간의 정과 사랑이라는 것을일상적인 감각으로 넌지시(노골적으로 보여주면 윤리교과서가 된다) 보여주고 있는 게 드라마의 강점이다.
연예팀장/weapo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