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신동아 사건을 통해 본 언론권력
`권력의 감시자'인 우리나라 언론이 어떻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군림하고 있는지를 해부하는 책이 발간돼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대의 박승관(언론정보학과) 교수와 장경섭(사회학과) 교수가 펴낸 「언론권력과 의제동학(議題動學)」(커뮤니케이션북스)은 하나의 의제(agenda)가 형성, 변형, 성장, 소멸되는 과정을 통해 언론이 유사 사법기관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가 분석 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였던 `한보그룹 사건'과 `신동아그룹 사건'. 조선ㆍ동아ㆍ중앙ㆍ한겨레의 보도기사 및 사설을 중심으로 내용을 분석하는 한편 검찰 관계자와 주요 일간신문 검찰 출입기자를 면접조사했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보철강의 금융상황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풍문은 96년 10월부터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으나 언론은 최종 부도처리가 발표된 97년 1월 23일까지 철저히 침묵해왔다. 이는 구체적 자료와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국가 및 재벌과의 암묵적인 공조 때문으로 풀이되며, 뒤에 이뤄진 보도나 일부 기자의 증언으로 그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한보의 부도가 공식화하자 재벌의 로비자금을 매개로 유지돼 오던 국가-재벌-언론 사이의 안정적 삼각체제가 깨지고 언론은 일제히 한보에 등을 돌린다. 그동안 홍보성 기사만 게재해오다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거액 대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출발부터 불행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뒷북을 치고 나선 것이다.
정태수 한보 회장의 구속과 김영삼 전대통령 차남 김현철씨의 구속에 이르기까지 신문들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며 검찰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지만 정작 사건이 종결되자 언론들은 숱한 의혹을 덮어버린 채 `민생 우선' 등을 내세워 봉합에 앞장섰다.
신동아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뒤늦게 비난공세를 퍼부으며 여론재판을 시도한 뒤 마지막에는 봉합을 서둘러 `영구 미제사건'으로 만드는 행태를 되풀이했다.
특히 `옷로비 파동'의 경우에는 언론의 대중 주도에 검찰이 이끌려다님으로써 국가사법기관의 수사기능을 언론이 잠식 대행하는 양상까지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수사가 일단락됐다가 청문회까지 열리며 재개됐는데 이 과정에서 언론은 검찰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사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필자는 민주적 사회에서의 의제 성장곡선이 완만한 상승과 하강으로 나타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급속히 상승했다가 하강국면이 시작되자마자 곡선이 끊어지는 비민주적 사회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각종 사회-정치적 쟁점과 의혹에 관한 갈등을 낳게 되며, `드높은 소음'이 합리적인 말과 토론을 질식시켜 버리고 만다.
필자는 "우리나라 언론은 `국가-자본-언론'으로 구성되는 지배연합 내부에서 꾸준히 지분을 증대시켜 왔으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성찰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비민주성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한국 언론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력은 한국 민주주의의 지표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고 강화시키는 동력으로는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