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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봉달이를 세번 만났습니다.


BY 봉순 2001-08-09

2001년 8월 3일 금요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열리던 그날,
저와 신랑은 우리의 마라토너 이봉주를 응원하기 위해 무려
3시간이나 차를 타고 에드먼튼으로 달려갔습니다. 봉달이가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TV에서만 보던 봉달이를
직접 만나게 된다는 설레임으로 기분 들뜬 오후였습니다.

찌는 더위와 강렬한 햇살 탓인지 마라톤 경기 일정은 해가 좀
질 무렵인 오후 6시 45분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우린 미리
도착해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마라톤 루트가 나온 지도를
보며 어느 지점에서 이봉주를 응원할 것인가를 의논했습니다.

그날 경기 루트를 보니 선수들이 두번 지나게 되는 지점이
두 군데나 있더군요. 5km지점이 35km지점과 만나고,
10km지점이 25km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서, 적어도
두번 이상은 이봉주를 만나게 될것이라는 기대에 즐거운 맘으로
5km지점쯤에서 미리 자리잡고 기다렸습니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나와있었는데 그 중 하와이에서 이봉주를 응원하기 위해
그곳까지 오셨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경기 시작 15분쯤 후에 5km 지점으로 선수들이 서서히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두를 달리던 흑인 선수 한명 외에 다른 선두
주자들은 서로 보조를 맞추며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TV에서 볼때보다 훨씬 조그마한 체구의
이봉주가 이마에 태극 마크를 새긴 하얀 띠를 두르고
달려오더군요.. 히히..

당연히 우리 둘은 목이 터져라 이봉주를 외쳤지요..
그가 들었을까요?
선수들은 TV에서 본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더군요..
봉달이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렸습니다..

마냥 한곳에서 기다리는것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우리도 열심히 걸으면서 맘속으로라도 응원해 주는게 힘이 될것
같아 그곳으로부터 10km지점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선수들을 10km지점에 미리 도착해서
기다릴 수는 없었지만 그 근처에 가면 25km때에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었지요..

힘들게 5km 정도를 걸어 그곳에 도착해보니 예상외로 루트가
산 아래에 자리잡은 고속도로를 지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산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없었지만 다행히 그리 높거나 가파르지
않아 사람들 몇몇이 마라톤을 구경하기 위해 산을 타고 내려가고
있더군요. 우리도 내려갔지요.. 사람들을 따라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앞까지 나와 선수들을 기다렸지요..

이십여분 후에 다시 이봉주가 나타났습니다.
그때까지도 이봉주는 몇몇 선두주자들 가운데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또 목이 터져라 이봉주를 외쳤습니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저인데도 어쩜 그리 크고 뻔뻔스러운
목소리가 나는지 제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외국 나오면 모두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봉달이가 지나간 후 우린 다시 서둘러 35km~40km 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수들이 그곳을 거친 후 얼마 안있어
스테디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곳을 지날때면 어느 정도 승부가
판정날거라는 예상이었지요.

생각보다 오랜 기다림끝에 저 멀리서 선수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는데.. 이미 선수 여럿이 지나갔는데도 봉달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것이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우승은 물건너 갔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에서는 어떤 일본 녀자와
그 남편인듯한 백인 남자가 아이를 목등을 태운채 모를 일본말로
자꾸 니뽄 어찌구 하면서 차례로 들어오는 일본 선수들을
응원해대는데 왜이리 열불이 나면서 그 남자가 한심해 보이고
밉던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두 한국 선수들이 다 지나갈때까지도 봉달이가 오지 않아
기권한것 같다는 짐작은 했으나, 옆에서 자꾸 신랑이 봉달이는
이제껏 한번도 기권한 적이 없다 하니 혹시 큰 부상인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속도 상하고 해서 그냥 그 자리를 떠날까
하는 마음에 길을 건넜습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건너편에서 계속해서 마지막 선수가 올때까지 서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선수들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더군요.. 사람들이
도로 중간까지 나와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으니까요..

조금 후에 마지막 선수가 지나가고 버스 한대가 그 뒤를 서서히
따라오길래 마라톤이 끝나 벌써 버스가 도로에 지나 다니기
시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여러명의 기권한 선수들과 함께 버스 안 뒷자석에 앉아 힘없이
고개 숙이고 있는 우리의 봉달이를 보았습니다. 우는 것 같기도
하고, - 제 신랑이 울먹이고 있는것 같다 했습니다 - 상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모습의 이봉주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승은 물 건너 갔지만 그래도 우린 반사적으로 버스에다 대고
목이 터져라 봉달이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이봉주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태극기도 들고 있지 않던 우리를 보고 그는 처음엔 어리둥절
하는듯 하더니 금새 알아보고는 고개를 꾸벅이며 우리에게
응답을 하는것이었습니다.
하아~~ 그 감동적인 순간이란..............

그의 표정에서 부끄러워하는, 미안해하는 마음을 읽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기대가 고맙기도 했겠지만 또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요? 그때 그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새벽에 집에 돌아와 신랑과 함께 이봉주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봉주가 의외의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건 아마 우리 둘의 응원 덕분일거라 자위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아직도 그 버스안에서의 이봉주를 생각하면 맘이 아픕니다.
언젠가 봉달이가 경기에서 패하고 귀국해보니 공항에 마중나온
이는 그의 어머니 한분 뿐이었단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에게는 봉달이를 만난것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동시에 승패 여부를 떠나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우리의
선수들에게 따뜻한 시선,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격려가 될지
생각해보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