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산책을 하다가 근처 도서관에 들러
오랫만에 서가에서 책을 읽다 문옆에 나무의자가 있어
그곳에 앉아서 한 10여분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그런데 한 아줌마가 다가와, 일어나라고 하면서
이건 아무나 앉는 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얼결에 "그래요."하면서 일어났다.
한참 책의 내용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의도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처럼 마음에 와닿는 책인데, 제목은
"나는 지금까지 왜 못하고 살았을까"-21세기에 꼭 해야할 88가지
였다.
그렇게 서서 한 3분 더 책을 읽다가
그녀를 보니, 내가 일어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한 마디 물어보기로 했다.
"아줌마도 그렇게 앉아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좀 웃기네요."라고...
그랬더니 자기는 자원봉사자고 이 서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이 의자는 자기가 앉는 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아줌마는 자원봉사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냥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그 자리에서 읽고 있는 정도였다.
왠지 석연치 않아서, 그럼 이 의자가 자원봉사자만이 앉는 자리냐, 그랬으면 애당초 우리가 앉지 못하게 "자원봉사원 전용 의자"라고
표실 해놔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니 나도 오랫만에 의자에 앉아서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10여분의 즐거움을 그 자원봉사자의 요구에 의해 뺏겼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약이 올랐다.
"자원봉사자가 서가를 둘러보며 책정리하는 일을 할 일이지, 시민이 앉았던 자리 뺏아가며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읽는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누구 약을 올리려고 작정을 했는지
"다른 사람은 1시간을 여기 앉아 읽을 때도 있다."고 부적절한 말을
하는 거였다. 지금 이 시점에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침운동겸 나왔기에 집에서 입던 옷차림(반바지와 민소매티) 그대로 나왔고, 머리손질이나 화장은 안 한 상태였다. 그래서 얕잡아 본 것인지---지도 옷차림은 나보다 더 나을 것도 없던데--이제 보니 나의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런 식으로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아줌마에게 조목조목 따졌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쾌적하게 책을 읽을 권리에 대하여. 그리고 옷차림으로 감히 함부로 사람을 평가받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되었다.사과하고 해명하라고 하면서 그 여자의 이름을 알아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조차 편안하게 다닐 수 없는 그런 사회라면 주부라는 소외계층의 권리는 예전보다 더 줄어든 것이다.전에는 감히 어느 누구도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었다.
아니면 먼저 충분한 사전설명을 하면서 "이 자리는 ~~~~자리니까 일어나 달라고 먼저 앉은 사람에게 겸손한 양해가 이뤄져야 했다.
그때 무심결에 일어나 보니
문득 내 소중한 권리를 내 부주의에 의해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는커녕 자기 책을 읽는 그녀에게 나는 강한 어조로 화를 냈다.
그 아줌마는 "저런 사람 첨 보겠다"는 투였지만
나는 생활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권리를 빼앗겨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에겐 더더욱 양보해선 안될 일이었다.
아줌마란 존재는
집에서 남편에게 많은 걸 양보하고 자식에게 희생하면서
정당한 자기권리조차 박탈 당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남편의 권위에 억눌려 항의조차 못하거나 안하는 경우가...
이제는 정말
"나는 더이상 못 참겠어, 이건 아니야."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무가 강조될 뿐, 권리는 부족한 아내라는 자리에서
얼마나 부당한 희생을 강요받았던가.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하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나는 내 할 의무를 다 했기에
이제 권리를 주장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음을 알고
주위에서 양보를 요구하는 숱한 부당한 것들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뚱뚱하게 살아도 된다.
또한 편한 옷차림으로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화가 너무 한 방향으로만 몰고가고
날씬한 여자, 직장여성 들만을 우대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풍조에 맞춰 살기 싫다.
또한 남보기에 어떻든 지금의 내가 좋고 당당하기만
하다.
나는 화장도 안하고 그저 편한 옷차림을 좋아한다.
체중도 과체중이다. 하지만 내가 살기 불편하지 않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도 아닌데
같은 여자가 여자의 옷차림으로 감히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세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쯤은 안다.
내가 당당하게 내 기준에 의해 살아가는데
그 여자가 뭔데 감히 나보고 일어나라, 마란지...
남은 1시간 앉게 하고 나는 10분 앉힌대나
자원봉사도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거지,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내게 자리를 요구한 것은 자원봉사자의
만용에 불과하다.
나는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공공기관에서 이성을 잃은 행동이라고 해도
나는 괜찮았다.
내 삶의 질과 권리를 겉으로 함부로 재단하는
그 아줌마의 얄팍한 생각에 화가 날 뿐이었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
법규만 지키면 된다.
그 의자가 그 자원봉사자의 것이라는 법규같은 게
어디 쓰여 있는가?
사전 설명도 없이
양해도 없이
단지 자원봉사자라는 미명하에, 자기 편의를 위해
어수룩한 전업주부의 권리를 뺏으려했던
그 자원봉사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그녀가 순수하고 친절한 자원봉사자라면
마땅히 나같은 시민의 즐거운 독서시간을
방해하지 말아야 했다.
또한 집에서 자식 기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감히 그 아줌마가 우월감을 가지고 나를 얕볼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자원봉사가 대단한 감투인 것마냥 행세하는
사이비 지원봉사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사소한 일, 한심한 의자싸움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큰 소중한 교훈이
들어있는 오늘의 이야기다.
아줌마들. 예의를 갖추고
남을 대합시다. 남의 권리를 침해하고 싶으면
사전양해를 구하는 기초상식이라도 가지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