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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BY 저도 경험자라
2001-08-11

너무 긴기사인데 친정부모 벽제모셨는데 혐오시설이라는 소리가 넘 듣기 싫더라구요. 그리고 돈 한픈없이 선산팔아 술값으로 날린 시아버지 자식들은 할 도리 해야 된다며 은근히 산사기를 강요할 때 드는 반감에 여기에 올립니다, 막연히 벽제 좋다고 알고 게신분께 정보도 드리고 싶고요. 이런 글 싫어하는 분께는 죄송합니다. [계도] 화장터가 혐오시설이라고? 2001.08.02.목요일 딴지 일보 장례문화 바로알기 우원회 2001년 현재 서초구에서는 난리가 났다. 서초구 곳곳에는 각종 플랙카드들이 나붙어 있으며, 서초구를 대표하는 각 단체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분주하다. 서울시가 청계산에 화장터를 짓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역이기주의다' , '아니다. 현실을 망각한 서울시의 잘못이다'는 공방이 연일 이어지고 재래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어 간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청계산. 서초구에서는 아주아주 먼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이라기 보다는 경기도라고 해야 맞을 만큼. 하여간 이에 대해 서초구의 입장과 서울시의 입장이 판이한 대립을 이루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의견대립도 연일 이어진다. 근데 웃긴 건 이 두곳의 입장을 잘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서 섣불리 어디 손을 들어주기가 참 묘~하단 거 되겠다. <짓겠다는 쪽 의견> 서초구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땅값하락이나 기타 발생될 걱정거리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 왜 지랄이냐? 무조건 화장터라고 하니깐 거기에 대한 거부감에서 오는 지역이기주의 아니냐? 솔직히 청계산과 고속터미널간의 거리가 얼만데 거기서까지 플랙카드가 붙냐? <반대하는 쪽 의견> 화장터가 들어섬으로 인해 집값이 떨어지고 양재천에 뼈가루가 날리고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큰 문제점은 청계산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의 교통량증가가 문제다. 너희들이 말하는 꼭 그것만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 양쪽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본 기자 이 청계산 화장터 건립과 더불어 벌어진 지지고볶는 싸움터에서 정말 씁쓸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가 그 부분이겠다. 그래 화장터, 너덜이 생각하는 무섭고 찝찝한 곳이다. 아니 과거에 무섭고 찝찝한 곳이었다. 이 곳이 현대의 납골당 되겠다 근데 혹시 요즘 새로 지어지는 화장터에 가본 적은 있냐? 거기 사진 본 적 한번이라도 있느냔 말이다. 보통 생각하는 재래 화장터와는 달리 완전 호텔수준이다. 다른 것으로 건립을 반대한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화장터가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면 그건 스스로가 '나 졸라 무식해요'라고 떠벌리는 것 밖에 안되는 게 요즘 화장터다. 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그리고, 장례·장묘절차라는 것은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써 결코 혐오스럽게 생각되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오히려 정중하고 가장 아름답게 치뤄져야 할 절차인 것이지. 그래서 민족정론지인 본지에서 친히 이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자 화장터 납골당 밀착취재소개에 나섰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혐오'의 기준이 뭔지 함 잘 생각해 보시라. 기사 잘 보고 앞으로 반대를 하려거든 다른 이유로 반대해 주길 바란다. 화장터는 이제 더 이상 혐오스러운 장소가 아니란 말이다. 참고로 현재 서초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볼썽사나운 '청계산 화장터 건립 공방전'의 자세한 양쪽 입장과 내용은 차후 본지에서 밀착취재후 기사로 다뤄서 까발겨 줄테니 고 부분은 따로 기대하시라. 본 기사는 화장과 납골 자체에 대한 것만을 다루었다. 화장터는 혐오시설이었다 오래 갈 것도 없이 1990대 이전의 화장터는 말 그대로 음산함의 본보기였다. 크고 검은 글씨의 플랫카드, 높은 굴뚝, 어두운 실내와 마스크를 쓴 사람들. 그런가 하면, 화장로에는 작은 창이 뚫려 있어 시신이 화장되는 모습을 바로 지켜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슬픔은 화장터 그 자체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만들어 왔다.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화장터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물어보면 '음산, 불안, 죽음, 무서움'등의 느낌을 말한다. 그러나 화장터라는 곳이 비단 이렇게 습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장소만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화장터도 많이 바뀌었다는 거겠다. 아래의 사진을 잠깐 보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자. 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자 어떠냐. 이곳이 현대식 화장터이다. 생각보다 졸라 깨끗하고 깔끔하지? 이렇게 변해있다. 2001년 현재 대한민국의 화장터라는 곳은. 또한 화장터에서는 검은색의 글씨 자체가 주는 혐오감 때문에 글자를 쓸 때에도 가급적이면 색깔이 들어간 밝은 색조를 사용한다. 화장터 주변의 음침한 분위기도 이제 없다. 그 곳을 가는 길은 양쪽으로 굵고 커다란 나무들이 늘어서있어 드라이브코스로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렇게 화장터는 그 이름이 주는 어두움에서부터 스스로 변모해가려 하고 있다. 우리의 장묘문화는 오로지 매장문화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1%정도인 1000㎢ 를 넘어섰으며 매년 여의도의 1.2배에 달하는 9~10㎢ 가량이 묘지로 잠식되고 있다. 이중 70%에 달하는 묘지가 개인묘지로, 공동묘지는 30%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전 국토의 묘지화가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은 비단 산림훼손이나 국토의 효율적불이용으로만으로 보기에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민은 어느시대인가부터 화장을 꺼려하게 되었다. '화장은 망자를 다시한번 죽인다' 라는 생각으로 매장을 고집하기도 한다. 또한, '전통적인 장묘문화인 매장을 거스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들도 유족들 사이에서는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매장문화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납골식 매장문화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고인돌이 무덤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을 해서 탈육을 시킨 후 유골만을 수습해서 납골의 형식으로 모셨다. 이러한 매장방식을 이중장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장제는 가족들의 유골을 한 곳에 모아 모시는 가족장제로도 응용되었다. 오늘날처럼 매장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일어난 일이었다. 풍수지리적 장묘관습에다 때마침 불어닥친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화장이 엄격히 금지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로는 쭈욱 '매장=올바른 장묘문화, 화장=올바르지 못한 장묘문화' 라는 느낌으로 이어진 거 되겠다. 오천년 역사에서 보자면 매장이 화장보다 절대적 우위를 점한 게 불과 몇백년 되지 않는다. 장례문화를 코믹하게 조명한 '행복한 장의사' 매장도 좋고, 화장도 좋다. 유족들이 소중한 가족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데에 있어 어떻게 예우를 갖추는가는 방식의 차이일뿐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망자의 사랑과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남은자의 기억과 안정인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가? 요즘의 우리덜,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다보니 덩그러니 좋은 묘자리 얻어뒀다가 매장할때만 슬프고 제사때 한번, 명절날 한번정도 찾아보는 게 전부가 되어 버렸다. 어떤 이들은 명절이 찾아오면 연휴랍시고 놀러가는 거부터 생각하기도 하고. 명절때만 되면 성묘니 차례행렬로 길들이 막히고 꼬인다지만 그에 반해 외국나가는 비행기표도 자리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미어터지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멀다는 이유만으로, 일년에 몇 번이나 어떻게 찾아가냐는 이유만으로 망자의 영혼을 소홀히 대하는 거 그거부터 조금은 반성해 보자. 정말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럴바에야 오히려 잊어 버리고 사는 것보다 화장을 해서 집근처의 납골당에 모신 후 시간이 날때마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가 기억하고 그리움을 전하는 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십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상주없는 묘자리가 되어버려서 이장도 못하고 방치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얼마나 많이 볼 수 있는가. 그렇게 결국 상주를 찾지 못해서 파내어져 버리는 것이 화장보다 더 슬픈 '망자를 두 번 죽이는 꼬라지' 인 것이다. 조금은 심각히 가족회의를 해 보아야 할 부분이겠다. 화장은 매장보다 잔인하다 유골함에 모셔져 납골당에 안치된다 사진은 판매대 위의 유골함. 유족들에게는 사실 화장이 매장보다 훨씬 잔인한 방법이다. 매장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하이얀 수의와 약간의 화장 化粧으로 꾸며서 편안한 모습으로 간직한 채 보내는 걸로 끝이 난다. 그러나 화장 火葬은 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유족들은 고인의 관이 화장로로 들어가는 순간을 본다. 그리고 멀리서나마 화장로에 불길이 치솟는 것도 보게 된다. 무려 2시간동안이나... 그뿐 아니다. 화장이 끝나고 나면 분골실이란 곳으로 유족들은 이동하게 된다. 이 분골실에서는 화장후 수습된 유골을 너무도 잔인하게 조각조각 부순다. 내 부모, 형제의 뼈가 조각조각 부숴지는 거 지켜보는 심정은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프고 아프다. 그래서 장례식 내내 울었던 유족들은 화장터에 와서 또다시 두 번이나 목을 놓아 울음을 터트리게 된다. 본기자 99년 1월의 차갑던 그 날씨에 어머니를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셨다. 장례라는 것을 어린시절에 밖에 접해보지 못했던터라 무조건 매장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신의 유언을 지켜 가족회의에서 화장을 결정했고, 화장의 상황과 분골실에서의 당신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많이 울었다. 차라리 이 불효자식의 뼈를 산산조각내더라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서럽고 아프던지...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니깐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마지막 모습을 본 덕분인지 더 빨리 안정이 되더라. 이상하지? 근데 그렇게 된다. 매장한 후에 추운날이면 고인이 추울까, 더운날이면 더울까, 비가 오면 물에 잠길까 전전긍긍하며 가슴 앓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하다. 이는 패닉상태에 빠진 유족들에게 '매장->탈육->유골->분골'의 길고긴 자연적 순리를 아주 짧은 시간에 보여줌으로써 더 큰 슬픔을 주어 오히려 빠른 안정을 유도해 내기 때문이다.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 한 아이가 아빠에게 쓴 편지 - 이 편지들은 나중에 책으로 발간된다 덕분에 화장이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은 한달에 한번정도 웃으며 납골당을 찾게 되었다.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도 사가고 그런다. 가서는 당신의 납골함 앞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편지도 써놓고 오곤 한다. 아직도 조금 쑥쓰럽긴 하지만...가끔은 나즈막히 '사랑해요. 어머니'라고 속삭이고 오기도 한다. 이제는 그때 매장을 해서 먼 곳에 모셨다면 이렇게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더 슬프고 고통스러웠을 꺼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덕분인지 본 기자도 나중에 죽음이 찾아오면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모셔지길 원하게 되었다. 근데 이렇게 분골의 순간까지 공개하는 것이 비단 위와 같은 이유만은 또 아니다. 그 이외에 투명성을 가져야만 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으니 참으로 엽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때 인골人骨 을 약에 쓰면 아주 좋다는 설이 있었다. 일부 패륜적인 화장터일꾼과 한약방에서 돈으로 인골을 빼돌리는 일이 암암리에 있어왔다. 몸에 좋다면 뭐든지 다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로 인해 인골은 아주 비싸게 거래되곤 했다. 이러한 조까튼 사례들을 막기 위해서 더 투명하게 절차를 행하는 것이란다. 현재는 화장로까지 운구하는 순간부터 분골실에서의 유골수습과정까지 전 과정이 CCTV로 찍히고 이를 중앙통제실에서 감시한다. 덕분에 이런 폐단들이 싸그리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니 이런 부분은 실로 칭찬할 만하다. 어쨌든 이러한 연유로 화장은 매장보다 잔인하지만 매장보다 더 심경의 안정을 빨리 가져다 주게되었다. 극한의 충격을 줘서 빠른 심경의 안정을 유도해 내게 된 것. 정말 아이러니한 조합이다. 화장과 납골은 생각보다 아주 간편하다 살아오면서 화장이라는 장묘문화를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우리네 유족들로써는 화장이라는 단어자체가 낯설다. 묘자리를 알아보고 매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화장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까마득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화장이라는 장묘문화는 너무나도 손쉽고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발인을 했다는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간편해진 화장터의 이용방법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유족들의 편의에 맞춰 간소화되고 있다. 물론, 예(禮)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간소화이기 때문에 행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망을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장례는 각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가시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한다. 보통 3일장이 치루어지고 나면 발인일자를 잡고 영구차를 이용해서 장재장(화장터)으로 이동하게 된다. 벽제화장터의 경우 화장일시를 5일전부터 예약할 수가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예약없이 선착순 화장이었기 때문에 새벽같이 장례식장을 출발해도 장재장에서 몇시간씩 기다리는 사태 아닌 사태를 겪곤 했지만 2000년 들어 이러한 예약시스템이 도입되면서부터 많은 부분에서 유족들이 슬픔을 덜게 되었고 또 편해졌다. 화장에 필요한 모든 것은 병원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화장터에 도착하기까지는 영구차를 운전하는 기사양반이, 화장터에 도착해서는 직원이 하나하나 안내를 해 준다. 그래서 처음 겪는 화장일지라도 절대로 당황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좀 더 자세한 화장절차를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하시라. 조목조목 상세히 갈켜 줄테니깐. 꽃으로 장식된 납골당 내부 그럼 이 화장터를 이용하는 요금은 얼마일까? 서울, 고양, 파주시민의 경우 벽제화장터 이용금액은 무료다. 그리고 기타 지역주민의 경우 1만 5천원으로 매장시 드는 비용과는 비교자체가 안된다. 만일 벽제에서 화장을 했다면, 용미리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용미리에는 여러종류의 납골당이 있는 데 현재는 추모의 집이라는 커다란 납골당이 있다. 이 곳에 유골함을 모신다. 가끔 영화에서 외국의 납골당이 나오기도 하는 데, 작은 사물함식으로 된 납골함에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 형식이다. 그렇지만 화장터라는 단어와 더불어 납골당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도 상당히 음침하고 차가워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각보다 아주 따뜻한 이미지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자신의 가족이 안치된 납골함 전면부를 유족이 꾸밀 수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화(造花)를 이용해서 아름답게 꾸며두었고 고인에게 보내는 카드나 편지들로 장식해 두었다. 그래서 이쁘다 못해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의 광경이 납골당안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그런가 하면 이곳에는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의 커다란 메모장이 있어 고인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사이버편지를 쓰거나 영정사진을 올려둘 수도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왕릉식 추모의 집'이나 '옥외벽식 추모의 집'도 좋지만 새로 만들어진 '용미리 추모의 집'은 여름과 겨울의 냉난방이 잘 되어 아주 쾌적하다. 그런가 하면 주위환경도 아주 좋아서 납골당에 고인을 찾아뵈면서 바로옆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야외에서의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도 있다. 실제로 주말이 되면 가족 나들이 겸 성묘를 오는 유족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실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납골당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 정말 바람직한 인식의 변화되겠다. 사망후에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참 정겹고 좋지 않냐? 참고로 좀더 상세한 납골당 사용절차를 알고 싶다면 역시 여기를 눌러라. 자세히 갈켜 주께. 왜 화장이 장려되어야 하는가? 죽음이란 삶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할 삶의 일부다. 죽음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고 보는 종교는 없으며,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종교를 받치는 가장 큰 기둥이라 하겠다. 인류의 대부분이 이러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으며, 아시아의 불교문화권에 있는 나라들은 사후세계와 더불어 환생에 대한 믿음도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 인한 장례의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다소 어둡게 각인되어져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왕릉식 추모의 집 - 용미리 납골 묘지 예로부터 '장례·장묘과정에서 생기는 지출은 흥정하지 않고, 제사에 쓰이는 제기와 제수는 깎지 않는다' 했다. 이는 망자에 대한 남아있는 자들의 마지막 예우이고 사망이후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했다. 그러한 연유로 이를 이용한 인부들의 비열한 각종 수고비, 차비요구는 현대를 장례·장묘에 대한 폐단이 극에 달하는 세기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곳에서는 묘자리를 파던 포크레인이 흙을 파다가 딱 멈추어 버린단다. 차비가 부족하다며... 또 산으로 운구를 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이 관을 땅에 놓고 차비를 보시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며 싸우는 건 이제 장묘절차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일부 몰지각한 병원에서도 이러한 장례식장 운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며 원가 수만원짜리 수의가 수백만원에 판매되거나 수십만원짜리 관이 천만원이 넘게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우리의 폐단은 죽음에 직면한 유족들의 슬픔을 등에 업고서라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장례 한번 치를라면 기백만원은 우습게 깨진다는 것은 현실이다. 가난한 서민들 세 번만 장례를 치르면 집안이 거덜난다는 말도 생겨났다.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돈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세상이 오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냐? 서초구화장장에 관하 딴지일보기사네요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가족납골봉분 이런 상황에서 화장과 납골은 국토의 몇%가 무덤이라거나 산림훼손, 경작지소실과 같은 쓸데없는 명분을 다 떨쳐버리고라도 아주 권장할만한 제도 되겠다. 봉분형식으로된 가족납골묘도 있어서 사후에도 영원히 가족들끼리 다같이 모여있을 수 있기도 하고... 우리의 고정된 인식보다도 화장문화는 더 빨리 변모해 가고 있으며,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밝은 이미지로 탈피해 가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인식이 바뀌어져 갈 때에 납골당은 우리의 생활 일부로 바뀌어 집 근처에 놓이게 될 날이 올꺼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혐오시설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한번쯤 시간을 낸 후 야유회겸해서 인근 납골당을 한번 방문해 보시라. 얼마나 좋으냐. 일년에 한두번 찾아가보지도 못하고 방치해 두는 묘소보다 한두달에 한번씩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드리고 절도 하고 하는 거. 풍수지리 다 따져서 좋은 데 모셔두는 것보다 이런 게 바로 효도고 고인에 대한 예 아니겠냐? 딴지 일보 장례문화 바로잡기 우원회 계도우원 백작가(baggy@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