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15는 그 어느 해보다도 뜨거웠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에 비분강개한 애국지사들의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한몫 했다. 신문과 방송의 8·15 특집은 예외없이 위험수위를 넘은 일본의 우경화에 초점을 맞췄다.
두말할 필요없이 최근 일본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그같은 행위가 왜 잘못됐는 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대응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감정에만 치우친 나머지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란 국익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국익과 국민감정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본이나 북한처럼 감정이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대상일 경우, 양자의 괴리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 문제라는 두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외교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철도청의 ‘일본어 안내방송 중단’이라는 해프닝은 차치하고라도 교육부가 일본 정부의 자금으로 이뤄지는 한국 유학생 파견 중단을 대응책의 일환으로 준비한 것은 제살 깎아먹기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국민이 흥분하더라도 침착하고 냉정한 대응을 주도했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감정적 대응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만일 이것이 경기침체와 여야의 극한대립, 남북관계 답보 등으로 국민적 불안을 해소시킬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내려진 결정이라면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답인가. 우리는 먼저 일본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은 독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천황제의 존재와 속좁은 계산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릇된 국익개념에 사로잡혀, 일본은 과거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역사적 상상력의 결핍현상'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한계가 국수주의로 발전할 것인 가이다. 그러나 미·일 안보조약과 문제의 교과서 0.4% 채택률이라는 참패를 안겨준 일본의 건전한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한, 국가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수는 있어도 과거와 같은 군국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이롭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긴 호흡으로 역사문제 해결을 위한 끈질긴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한·일 투자협정 체결,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공조 등 우리에게 득이 되는 조치를 계속해서 취해 나가야 한다.
요컨대, 과거사의 '완전한' 해결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이 보여준 유연한 대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감정을 앞세우는 한풀이식 접근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성숙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