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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 1


BY 자기야 2001-08-21

당신

처음 만날 당시 난 너무 사는게 힘들고 지쳐서 모든걸 포기하고
그저 아이 하나 바라보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죽이며 살고 있었죠
어느날 부턴가 술만 먹으면 낮선 누군가와 한없이 얘기가 하고싶어
빈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윙 하는 전화음만 들을때도 있었죠
이럴때 내 전화 받아줄 사람 내 얘기 들어줄 사람 하나만 있었으면
하고

그럴즈음 당신을 만났어요
호기심반 반발심반 그리고 술기운 빌은 장난끼로
당신 처음 만나던 날
무지 많은 비가 내리고
이건 사기야 분명 나쁜놈일거야
그리고 난 미쳤어 라고 속으로 한없이 되내었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이런 미친 짓은

엄마 없이 자라는 딸이 너무 가엾고 예뻐서 감히 새 인생은
생각치도 않는다는 당신
나 그말 믿을 만큼 모자란 여자 아니라고 내심 혼자
당신 비웃었었어

나 술 마시고 버릇대로 누군가와 통화가 하고 싶어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
당신에게 전화했을때 마다
당신 내 전화 받아 준적 한번도 없었잖아
그래서 더더욱 당신 신뢰감 안갔고

나 맨정신으로 있을때
당신 전화 받고 내가 그랬지
난 남의 남자 만나고 다닐만큼 그렇게 한심한 사람 아니니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그리고 당신 이틀 낮밤을 미친듯이 전화하고
난 안 받고
정말 당신 같은 사람 필요 없었는데

나 사실은 얼마전에 알았어
내가 그렇게 늦은 새벽 3시가 넘어서 당신에게 전화하고
그랬다는거
당신 평상시 전화 진동으로 해놓고
항상 바쁘고 피곤해서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진다는거
그래서 당신 내가 술마시고 한 전화 한번도 받아 줄수 없었다는거

당신 항상 바빠서 자주 전화 못해주는거 미안해 하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거 미안해 하지만
난 정말 그런거 아무 상관 없었어
당신 부인과 이혼하고 딸아이 하나 키우는거 사실인거 알고
당신 그렇게 나쁜사람 아니라는거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당신을 이렇게 까지 좋아하게 될줄은 몰랐거든

저번주에 당신 연락 나흘씩이나 없을때
나 그때 깨달았어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걸
입술이 마르고 입안은 헤집어 놓은거 마냥 화끈거리고
머리에선 열이 펄펄 끓는데
생각나는건 당신 얼굴,목소리.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거지 이거
그날 밤에 당신 전화받으면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원망의 말 하고 당신 때문에 나 지금
아프다고 어린짓도 해보고
당신 갑작스레 지방 다녀 오는길이라며 미안하다며
당신 때문에 아픈거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그 피곤한 몸 이끌고 그 새벽에 차몰고 나에게 온 당신
며칠만에 본 당신
내가 보기에도 많이 피곤해 보이고 힘들어 보여서
나 얼마나 내가 철없는 짓 했나 후회했지만
그래도 당신 볼수 있어서 아픈것도 잊을만큼 그렇게 행복했었어
밤새 부천 중앙공원에서 차문 열어 놓고
시원한 새벽공기 마시며 차 밖으로 보이는 포장마차와 거기
드나드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당신 내손 꼭 잡고 피곤에 지친
눈 힘겹게 뜨면서 내 얘기 내 투정 참 잘도 들어주고 다독여 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게 겨우 이제 사일도 채 안지났는데
아까 낮에 당신 전화 받고 안심되고 행복했는데
잘 버틸수 있을거 같았는데
밥 좀 잘 챙겨먹고 술은 조금만 마시라고
내 걱정해주는 당신 전화 받았는데

나 왜 이러지
나 당신 미치도록 보고싶다
당신 그 목소리 다시 한번 듣고 싶다
나 정말 이러면 안되는거지
나 드디어 미쳐가나봐
내가 무섭다

나 아침에 눈뜨면
당신 조금만 좋아하고 조금만 보고싶어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