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자작나무숲을 지나자 사람이 사라진 빈 마을이 나타났다.
강은 이마을에서 잠시 방향을 잃는다.
강물에 비치는 길손의 물빛향수,
행방을 잃은 역사의 음영만이 짙어가고
파스테르나크의 가죽장화가 밟았던 눈길
그는 언제나 뒷모습의 초상화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에서 무너지는 눈사태의 눈부심.
눈보라가 그치고 모처럼 쏟아지는 햇살마저
하늘의 높이에서 폭포처럼 얼어있다.
우랄의 산줄기를 바라보는 평원에서는
물기에 젖은 관능도 마지막 포옹도
국경도 썰렁한 겨울풍경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선지피를 흘리는 혁명도 평원을 건너는 늙은 바람도
끝없는 자작나무숲에 지나지 않다.
시베리아의 광야에서는 지도도 말을 잃어버린다.
아득한 언저리뿐이다.
평원에서
이다는 것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는 뒷모습이다.
휘어진 눈길의 끝
엷은 썰매소리 같은 회한의 이력
아득한 숲의 저켠.
풍경을 거절하는
나도
쓸쓸한 지평선이 되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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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1932년 대구출생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원 석사.박사과정 마침.
1955년 <시와비평>창간 동인.
1957년 <문학예술>에 추천을 마침.
현재 부산 고신대학교 의과대학교수.
시집으로 <해조>(1969)
산문집 <부드러운 시론>(1992)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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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장의 詩 한수
미이라는 항상 해가 뜨면 오지요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았고요 근육질 몸매로 양식을 구하지요 긴머리 휘날리며 룰루루루 노래하죠 그녀는 사랑을 말하지 않고요 누구든 사랑하죠 살찐바람소리 천지를 에워싸고 나뭇잎으로 옷만들어 입고 팬티는 없어요 그녀는 항상 해가뜨면 오지요 숲속에서 룰루루루 짐승들과 싸우지요 사랑이란 지극히 순간의 감정이에요 백년을 약속하지 않지요 언제든지 벗길수있는 본능이란 야성에 가까워요 그녀는 사랑에 목숨걸지 않지요 몇천년지나면 미이라가되지요 미이라는 항상 항상 일곱시에 오지요 경쾌한 음악이 울리지요 그녀는 빨간구두를 신었고요 구두 끝에선 피내음이 없지요
욕하지말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가시로 자신을 찌르지 않지요
그녀는 노래하지요 그녀가 그대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요 위선이라고요? 웃기지마세요 그녀에게선 아무런 내음도 없지만 향긋함 속에 있는 듯하지요 그녀는 항상 일곱시에 오지요 나뭇잎 같은 치마 긴머리 룰루루루 노래하며 그녀는 혁명을 말하지 않지요 미이라는 항상 일곱시에 오지요....지은이 이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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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옥수수를 좋아했다. 옥수수를 줄줄이 다음다음 한알씩 뜯어먹는 맛이 재미가 있다. 알이 배고 줄이 곧은 자루면 엄지손가락 켠의 손바닥으로 되도록 여러 알을 한꺼번에 눌러 밀어 얼마나 많이 붙은 쌍둥이를 떼낼수 있나 누이와 내기를 하기도 했었다. 물론 아이는 이 내기에서 누이에게 늘창 졌다. 누이는 줄이 곧지 못한 옥수수를 가지고도 꽤는 잘 여러알 붙은 쌍둥이를 떼내곤 했다.
하루는 아이가 뜰안에서 혼자 땅바닥에 지도같은 금을 그으며 놀고 있는데, 바깥에서 누이가 뒷집 계집애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 마침 안의 어른들이 듣지못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열린 대문 새로 내다보았다. 아이가 늘창 이쁘다고 생각해오던 뒷집 계집애의 내민 역시 이쁜 얼굴에서, 그래 안맞았단 말이가?하는 말소리가 빠른 속도로 게속되는 대로, 또 누이의 내민 밉게 찌그러진 얼굴에서는, 안 맞디않구, 하는 소리가 거의 같은 속도로 계속 되고 있었다.... 황순원...(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