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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레드 컴플렉스


BY 핑 2001-08-25

지난 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박정희와 레드 컴플렉스"를
보고 박정희에 대해 떠올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박정희란
인물은 베일을 벗기면 벗길수록 인간적인 면을 찾기 힘든
냉혈한처럼 여겨지는군요.

60년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정희가 해방직후 국군내 남로당
일원이었고 그로인해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으며,
그의 형, 박상희는 대구 10월 항쟁을 주도한 공산주의자 중
하나로 학살되었다는 사실이 민정당 윤보선 후보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박정희의 사상 전력이 문제가 되었지요..

아이러니컬하게 박정희는 사상문제의 최초 피해자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같은 이유로 가족이나 친지가 학살당한 많은 농촌
지역의 지지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 당시 진보의 색이
강한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도 박정희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하는군요..

북한의 김일성은 내심 좌익경력이 있는 박정희를 환영했으며,
남한 고위층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이 통일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박정희 형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을 밀사로
내려보냅니다.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지요.

형의 친구로 자신도 어릴적부터 잘 따르고 형들로부터
사상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은 박정희는 황태성을
만나주지도 않고 간첩 혐의로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시킵니다.
마침내 황태성은 박정희 대통령 취임 3일전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한때는 자신도 공산주의자였고, 진보세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취임하자 오히려 국가 안보를 국시로 삼고
연좌제나 국가보안법을 더 강화시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상 그 자체에
심취해서라기 보다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택하거나 혹은 뭣도 모르고 남들이 하니 같이 따라가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겠지요. 그깟 "사상"때문에
이승만, 박정희때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를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네요..


요즘 신문에선 일부 방북단의 돌출행동과 북한과의 사전
물밑접촉이 문제 되어 긴급 연행된데 논란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경거망동한 행위까지 두둔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깟 허무맹랑한 사상 논쟁에 여러 사람이
구속되는건 안타깝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강정구 교수의
구속은 많이 안타깝더군요.. 그의 성향이 좌익에 가깝다
하더라도, 그가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위해 애쓴다는 인상보다는
소신껏 반미와 보안법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람인데,
그깟 방명록에 서명한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