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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차이


BY wwfma 2001-10-06

옛날에 보던 TV 영화 서부극에서는 주인공 존웨인이
악당을 한방에 물리치는 장면으로 도배가 되곤 했었다.
언제나, 아무리, 떼로, 쌍권총을 들고 덤벼도 존웨인은 총 한방 맞지 않았고
유유히 자기 권총을 뽑아 한방 쏘기만 하면
이름 모를 그 수많은 악당이 땅바닥에 나뒹구는 걸로 대미를 장식했다.

꼬마였던 나는 모든 영화를 보면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해내었고
곧 좋은 사람은 항상 내 편이었고 그래서 항상 해피엔딩이었다.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흥부와 놀부에서 시작한 모든 드라마의 시작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나 가끔 좋은 사람은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거나
좋은 사람도 해피엔딩의 몫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불현듯 깨닫곤 한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아마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나는
그 이분법의 자를 대어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좋은 사람편이라는 걸 증명하는데 써버렸던가.

세월이 가면서......
사람은 핸드폰 광고처럼 "움직이는 거야"라는 외침이 마음에 닿는다.
내가 더 이상 좋은 편에 항상 머무르고 있다는 어거지의 기운이 없어졌을 때
나는 그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만 상황이 만드는 입장 차이였노라고.

며칠 전 온 국민이 들썩이는 추석명절에도 아마 우리는 그 입장 차이 때문에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무수한 경험들을 가슴 한 켠에 담아두어야만 했으리라.
시어미 노릇, 며느리 노릇, 딸 노릇, 아들 노릇, 남편 노릇, 시누 노릇, 올케 노릇, 형 노릇, 아우 노릇…
지키는 사람, 올 사람, 보낼 사람, 갈 사람, 받는 사람, 주는 사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웃사람, 아랫사람…

나는 시집에서 뚝 떨어진 막내며느리인데
어디가나 인심 좋은(?) 맏며느리 감이라는 덕담이 무색하게
시집에만 가면 일은 한 개도 못하면서 말만 앞서고 시샘만 사나운
영락없이 싸가지 없는 철딱서니 막내며느리 꼴이다.
매번 그게 억울하고 분하여 분위기를 쇄신해보려 신경도 써봤지만
이젠 포기하고 산다.
하긴 전원일기나 매일 드라마에서처럼
맏며느리가 후덕하고 둘째가 항상 모자라야 말이 되지
모자라는 맏며느리 역할을 아우가 챙기고 있어서야 제대로 된 집안 꼴로 비춰지겠냐는
나름대로의 정당사유를 붙여대면서 말이다.

대신 친정에 가면 속 깊고 마음 넓은 딸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똑같은 나인데 여기가면 이렇고 저기가면 저렇다. 왜 그럴까?
나는 그걸 입장 차이라고 여기고 있다.

처녀 시절, 아파트 마루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면
엄마가 문도 제대로 안 닫고 목욕탕에서 세수를 하느라 물소리가
TV 볼륨을 넘어버리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칠칠맞은 아줌마 취급을 해대며
왜 목욕탕 문을 열고 세수를 하냐고 구박을 하면서 문을 꽝 닫아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볼일을 볼 때도 수시로 문을 열어놓는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엄마가 목욕탕에 들어가 문을 잠글라치면
얼마나 그 문을 잡고 꺼이꺼이 울어대는지 아마 당해본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그 버릇이 세월과 함께 경계가 불분명하게 흘러가 버리고 나면
나도 분명 스무살 난 딸아이에게 그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간 세월의 변명은 아마 주책없는 늙은이의 넋두리 쯤으로나 여겨질까?

나이 40이 된 동네 쪽진 머리의 아줌마의 조심성없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저 나이쯤 되면 팍 죽어버려야지 했던 사춘기 소녀가
지금은 그 나이가 되어 눈을 흘긴다.
"죽긴 왜 죽어? 지금이 인생의 황금긴데....."

사위가 애 안고 기저귀가방 들고 들어서면 현관문 열어주며 '자상하기도 해라.'
아들이 조금 있다 그 꼴로 들어서면 '미친 놈!'이라 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우린 어쩌면 저마다 다른 환경과 경험과 위치를 가지고 또 때마다 바뀌는 입장을 가진다.
해서 우리의 변덕도 죽이 끓는다.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해서 나쁜 놈 다 잡아야된다고 설치다가
내 사진이라도 적발되면 이래서는 믿음의 사회가 안되느니 5호담당제니 어쩌니 열을 낸다.
어쩌랴? 인간이 그만큼 자기 입장에만 충실하도록 만들어진 얄팍한 심사를 가진 것을......

우리가 살면서 조금이라도 각자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한다면
아마 우리는 살면서 조금씩 변하는 내 입장따라 치사한 게거품을 물지는 않게 될런지도 모른다.
더불어 내가 가진 어떤 입장에 비교적 푸근한 마음으로 충실할 수 있다면
그렇게나 자로 재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둥근 추석 보름달 밑에서 조금씩 서운하게 마음 한자락을 접었던 이 땅의 며느리요, 딸들도
자기 입장에 충실하고 남의 입장도 헤아려보고 나면
비틀린 심사를 접고 쟁반같은 달 한가운데로 기꺼이 풍덩 빠져볼 수 있지 않을까하여
오늘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본다.

http://column.daum.net/wwfma/ 살아내기 칼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