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애비가 자기 친구들이랑 모임이 있다네요.그래서 일요일 아침 일찍 갈까 하는데요.
그말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님 말씀을 자근자근 누르시며 한말씀 하신다.올라믄 오고 말라믄 말아라 니 맘대로 해라.
정녕 그 말씀 밖에는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 뒷말을 잇지 못하게 말씀을 하시는지라 무안해진 나는 황당하게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요는 그랬다.
우리 어머님 내가 올해 들어 시댁에 잘 다니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셨는데 추석날까지 연휴 시작하는 날 안오고 한밤 자고 일요일날 온다고 하는게 못마땅하셨던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올들어 시댁에 자주 못다닌건 큰 놈 학교 보내서 아무래도 잔신경이 쓰이다 보니 그랬던건데 그리 매정하게 당신 하시고 싶은 말 다 하고는 남의 속을 뒤집어 놓다니.
전화를 끊고는 애먼 신랑망 잡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어머니 무서워하는 며느리라서 어쩔수 없이 군시렁대면서도 토요일 오후에 짐을 쌌다.
그리곤 혼자서 애들 셋을 태우고 한시간쯤 걸리는 시골을 미리 갔다.
물론 신랑은 우리 집서 저녁때 만날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친구들 기다리고 있었고.
먼저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신랑의 얼굴엔 비실비실 웃음이 새는 것 같아 얄미워 죽을 뻔 했다.
막상 시댁에 들어가니 전화로 눈치 줬던 일은 본인도 까맣게 잊었는지 반갑게 맞아 주신다.
하지만 곧 서운했던 말씀들을 풀기 시작한다.
산에서 밤을 따왔단다.
어머니 작은 산밤을 보여주시며 이러신다.
와서 이 밤이랑 갖다가 애들 쪄주고 그러지 너는 뭐가 그렇게 바빠서 오도가도 안했냐.
평소의 나 같으면 말대꾸 없이 약으로 어머니 소리 들었겠지만 나도 아침부터 꼬라지가 나있던 차라 곧바로 어머니 말씀을 되받아쳤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산밤 두개를 딱 붙여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밤 두개 붙여 놓은 크기의 옥밤이라고 옆집에서 주길래 잘 쪄먹었어요.그 밤 어머니 밤 두개 만 해요.아니 세개만 한가.
어머니 얼굴 흑빛으로 변했다.
다음날 신랑이 시댁으로 일찍 와야지 전화도 없어서 확인을 해보니 어젯밤 친구들 일곱명과 술먹고 고스톱 치고 우리집에서 잤다는게 아닌가.살다가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은게 한 번도 그런적이 없는 사람인데 마누라가 집을 비우니 친구들이 얼씨구나 우리집을 여관방으로 삼은거였다.
그렇다고 순순히 방을 내준 신랑이 미워서 옆에 어머님이 계시건 말건 한소리했다.
남자들이 잤다면 화장실이 젤로 뻔하니까 화장실 특히 변기 쫌 빡빡 닦고 술먹고 어질른건 깨끗이 치우고 오세요.
슬쩍 보니 또 어머니 얼굴색이 갈라고 한다.
어머님 한말씀 또하신다,
너네 집서 잘자고 잘 놀았으면 그것도 한부주지 뭘 소리를 허냐
그러면서 남편을 데릴러 갔다 오라는 것이다.
어머니와 나의 신경전이 한참이어도 남편은 시댁에 올 생각을 않했다.점심을 훨씬 넘긴 시간.남편이 풀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여보.어젯밤에 같이 논 친구중의 한 명이 우리집 키를 가져갔나봐.
애써 참고 있었던 분노가 실체로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시댁에서 우리 집까지는 한시간 거리지만 애들 셋 다 태우고 갈려면 보통일이 아닌데 어제 같이 안오고 자기만 친구들이랑 밤새 술마시고 논 것도 미워죽겠는데 키까지 잃어버렸다니까 남편에서 웬수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옆에서 한 말씀 또 하신다.
미친놈.나는 미친놈의 실체가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해석을 하신다.
언 놈이 술 먹고 남의 현관 키를 갖고 갔다냐.미친놈.
기가 막히고 코도 막혀서 켁켁 거릴 판이다.
어머니 술 먹고 자기 집키를 준 놈이 미친놈이여요.술 먹고 키를 갖고 간 놈이 미친 놈이여요.
느닷없는 며느리의 도전장에 시아버지 본능적으로 시어머니의 낯빛을 살핀다.
그말만 남겨놓고 결국은 우리집으로 애들 다 태우고 남편을 데릴러 왔다.과음 한 남편은 내가 와서도 내리 몇 시간을 잠만 잤다.
나도 모든걸 잊고 잤다.
한 네시간 내집에서 푹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좀 나아져서 다시 시댁으로 갔다.
남편은 괜히 그 일로 나에게 주눅이 들어 덕분에 모처럼 편안한 명절을 보낼수 있었다.
어머니도 말 대답 톡톡 하는 며느리가 미우셨는지 더 이상은 시비를 걸지 않으셔서 어머니와의 한판승부는 내가 이긴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