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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시아부지의 한양 상경기...


BY 채 마르지않은 장 2001-10-24

두어해전...
서울에 살고있는 둘째시동생의 결혼식때 신혼여행가는 것을 배웅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강에서 유람선도 태워드리고 63빌딩에도 모셔가기로 계획이 잡혔다.
결혼식은 다음날이지만 차를 대절해서 시골분들을 서울까지 모시기가 미안해서 결혼식 1주일전에 시골에선 피로연식으로 식당에서 동네어르신들을 모시고 점심대접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서울에서 준비하실 것이 많으시니까 먼저 올라가신다고 하니 아버님께선 우리랑 같이 올라가게요."
"오냐~! 그라믄 이따 니 광주에 올라가기전에 잊어묵지말고 느그아파트 동. 호수랑 전화번호하나 적어놓고 가그라."하시는 울아버님...
"네. 쪼까 이따가 적어 드릴께요."하고 말씀드렸는데 내가 그만 까마귀고기를 먹고 말았다.
하이고~~ 아이 둘낳고 나이가 사십줄에 접어들다보니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느는 것은 건망증이로고~!
울시어머니는 우리집이며 서울 시동생네에 자주 왕래를 하셨지만 울시아부지는 3년전에 우리집에 딱 한번 오셨었다. 그것도 울시어머니를 따라 잠깐 들르셨다가 방바닥에 궁뎅이 붙일 새도 없이...닭장속에 갇힌 것처럼 답답해 하시며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다보시면서 담배 한개피 피우실 시간정도만 머물다 가셨었기에 광주지리를 모르시는 울시아부지...
나 역시 잘 찾아오시려나~~! 하는 불안감마져 없지않았다.
"아버님~! 아범이 근무가 끝나는대로 출발하자고 하니까 너무 늦지않게... 늦어도 1시까지는 올라오세요. 올라오시는대로 저희집에 전화하시거나 시골에서 출발하실때 전화하시는 거 잊지말고요. 마중나가든지 하게요."
"오냐~~! 알았다."짤막하게 대답하시고 끊으시던 울시아부지...

지금쯤 출발하셨을까? 한시까지는 오시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11시정도에는 출발을 하셨어야 하는데...어느새 시간은 두시를 훌쩍 넘고 있었다.
한시까지 오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한시에 출발하시라는 걸로 잘못 알아들으셨을까?
시간이 지체될수록 마음은 안정되지않고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베란다로 나가 저 멀리 내다보이는 버스정류장만 주시하고 있었다.
한시에 출발하셨어도 벌써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어이, 아부지는 오셨는가?"줄기차게 남편의 확인전화는 계속되고...
"아니, 아직..."
몇시에 출발하신다는 전화라도 하셨으면 터미널로 마중이라도 나갔을텐데 아무런 전화도 없으신채 시간은 6시가 넘고있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부랴부랴 시골 동네아짐한테 전화를 해서 울시댁에좀 가봐 주십사~! 하고 부탁드렸더니 울시댁엔 문이 잠겨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분명 올라오시긴 하신 건데...하이고~~~우리집을 못찾고 계신게 분명했다.
그렇더라도 택시타고 무슨동 무슨아파트만 찾으면 될 건데...
아파트에 와선 아들 이름만 대면 갈차줄테고 우리집 전화번호를 모르면 114에 물으면 금방 가르쳐 줄테고...
시간은 자꾸 가는데 소식이 깡통인채로 함흥차사이신 울시아부지로 인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처음엔 느긋하게 "좀 늦으신가보지. 좀 더 기다려보세. 물어서라도 찾아오시겠지."하던 남편도 시간이 지날수록 안절부절하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거기 터미널이죠? 혹시 시골에서 올라오는 차가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죽했으면 별의별 상상과 추리를 다 해보며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결혼식은 다음날 12시인데...결혼식이 끝나고 예정된 유람선이며 63빌딩관람은 고사하고 혼주가 없는 결혼식을 치루게 되는 건 아닌가?
울시아부지한테서 연락이 올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다간 오늘 올라가긴 영 틀려버린 것 같았다.
전화번호를 몰라서 수첩을 가질러 다시 시골에 내려가셨다 오셨어도 몇번은 왕복했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벨은 울리지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집전화번호를 모르면 서울 전화번호도 모르실텐데...
서울에선 왜 안올라오냐고 전화오고...처음엔 걱정하실까봐 말씀을 못드렸는데 저녁 8시경에 시아부지를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그때서야 시아부지한테서 연락이 끊겼다고 말씀드리고 혹시 서울로 바로 가셨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터미널로 나가보라고 말씀드렸다.
우리는 우리대로 서울로 가는 시간내내 시아부지에 대한 걱정때문에 애가 타고 서울식구들도 온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고...각각의 집에 대기조와 서울역이며 고속터미널에 파견조로 나뉘어졌다.
"뭔 연락 없어요?"올라가는 시간내내 서울 가족들과 연락을 취해봤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거였다.
이제 밤 12시가 넘어서고 있는데...지갑을 분실하셔서 차비가 없어서 못올라오시는 건 아닌가? 그렇더라도 곧 무슨 연락은 있을테지만 내일의 결혼식은 엉망진창일 것 생각하면 아득했다.
서울 톨게이트를 막 지날 무렵에 핸드폰이 또 울렸다.
"느그시아부지 서울로 바로 오셨단다."그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식구들이 다 모인 시동생네집에 갔을때 그토록 애를 태우던 울시아부지는 아무말씀도 없으셨다.
원래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그러려니~! 하고 이해는 하지만 그때만큼은 말씀이 없으신 울시아부지와 함께 답답한 40년의 세월을 사셨을 울시엄니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서울로 바로 가실거면 전화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우리집을 못찾으셨어요?" 행방불명된 시아부지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반갑기도 하면서 애가 탄 걸 생각하면 무척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느그 아파트까지는 가셨단다. 그앞 상가에서 갈증난다고 맥주까지 사 드시기까지 하고...일찍 나서느라고 아침도 드시는 둥 만둥하고 나섰는데 하루종일 드신 것이라곤 맥주 한잔이 전부인채로 탈탈 굶으셨댄다."묵묵히 앉아계시는 시아부지를 대변해서 말씀하시는 울시엄마.
"아니! 그럼 우리집 동 호수를 모르면 경비아저씨한테 물어서라도 오시지 그냥 가셨어요? 난 전화만 기다리느라 한발자국도 못나갔는디..."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었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퇴직하신 후 시골에서 아파트 관리실에서 근무하시고 계시던 터...아파트에서 아무개집을 모를땐 경비실에 물어보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분이 우리 아파트까지 오셔서 못찾고 그냥 가셨다니...사람한테 묻기가 뭐하면 눈에 안보이는 114로 물어보시지 아들이름을 잊으셨던 것일까?
"114도 다 퇴근해 버렸는가보제~~!
아! 맞아 토요일이니까 일찍 퇴근해 버렸겠네."옆에서 TV를 보다말고 작은시동생이 우스갯소리를 해서 모두들 배꼽쥐고 웃고 울시아부지께선 민망하셨는지 담배 한개피 들고 베란다로 나가셔 버렸다.
"나(울시어머니) 먼저 올라오면서 비상금으로 5만원을 드리고 왔는디 그걸 다 써버렸다고 한다야. 느그집 아파트 이름은 아는데 무슨동인지를 몰라서 그아파트이름이 있는 동들을 택시타고 다 쓸고 다니셨나 보더라. 느그아파트까지도 가셔서 꼭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면서 그냥 오셨다는디 저번에 갔을때는 느그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길너머에 넓은공터가 있고 거기에 채소를 갈아둔 걸 봤는데 그게 안보여서 다른 곳을 헤매고 다니시느라 느그시아부지도 애가 타셨나보드라."여전히 외로운 대변인으로 나서신 울시어머니...
그때가 언젠디...지금은 거기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버렸으니 공터만 찾으신 시아부지로선 그냥 가실만도 하겠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시다 우리가 출발하는 시간과 비슷한 시간대에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셨다는데 서울 전화번호도 없으셨고 안양큰집전화번호하나 달랑 외우고 계신 게 전부였다.
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막막한 서울땅을 향한 버스속에서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그리고 강남터미널에 첫발을 내리셨을때 연락도 못받은채로 미리 마중나와있는 가족들을 보고 얼마나 안도해 하셨을까?
"아버님~! 진짜로 114안내원들이 다 퇴근해부렀다요?"
아직도 전날의 애탄 서운함과 가슴이 철렁거림은 여유로 남는다.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울시아부지...
"그랑께 말이다. 입은 흉년에 죽 풀어 먹을라고 있는 게 아닌디...입이 없으면 손발이 고생하는 겨..."평생을 말수없이 사시는 울시아부지를 대변하시는 울시엄마...
그렇게 몸살과 같은 해프닝을 겪고 다음날 결혼식후 63빌딩관람이랑 유람선은 물건너가고 친척분들을 시동생네에서 따로 대접해드리게 되었는데 이번엔 울시어머니의 해프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주인인 시동생은 아즉 피로연장에 있고 울시어머님이하 친척분들이 시동생네로 향했는데 울시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열쇠가 집열쇠가 아니었던 거다. 아침에 미용실에 갔다가 예식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다가 열쇠를 챙겨가셨는데 집열쇠가 아닌 책상열쇠를 담고 가셔버린 거였다.
그때문에 아파트 복도에서 한시간 가량을 서성거려야 했는데 친척분들에게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하셨었다.
그땐 너무 황당한 일의 연속이어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면 실실 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남들은 일할 힘들이 남아돌아도 직장이 없어 부랑자처럼 서울역부근에 쪼그리고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데 아즉 울시아부지께선 70을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성실하다고 인정받으시고 시골아파트의 관리실에서 몇년째 근무를 하고 계시니 그연세에도 일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아야~! 언제 한번 내려오그라~!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를 누가 다 묵을 것이냐~! 그라고 감은 누가 다 따묵을 것이냐~!"하시는 울시아부지...
지척에 있으면서 요즈음 뭐가 그리 바쁘다고 통 못내려가뵈었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아버님, 죄송해요~! 조만간에 애들 데리고 한번 내려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