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출장갔다가 (도교육청에서 만드는 성교육 CD건으로) 시내에서 남편을 만났다.
마침 차도 수리를 보냈고 해서 남편 차나 얻어 타고 집에 와야지 하는 생각에 전화했더니 같이 갈 곳이 있단다.
어딘가 궁금했는데 도착한 곳은 어제 처음 우리 물건을 전시하는 일도지구에 있는 하나로 마트였다.
남편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나는 우리 귤이 어디에 있나 눈을 크게 뜨고 찾았다.
과일을 전시하는 한 곳에 유기농 귤 판매라는 표시가 있었고, 낯익은 귤상자가 눈에
띄었다.
마침 어떤 아주머니께서 시식용 귤을 맛보며 남편에게
"이거 맛이 달아, 먹어봐, 우리 이거 서울 갈때 선물용으로 사서 갈까?"라며 말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의 시큰둥한 얼굴을 바라보며 내심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주머니는 시식용 귤을 몇 개 더 먹어보더니 시큰둥해 하는 남편을 따라 매장의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쉬움... 섭섭함...
조금 후에 남편이 내 곁으로 오더니 전시되어 있는 귤 상자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옆에 전시되어 있는 때깔좋은 귤 들 사이에 우리 귤은 모양도 별로거니와 빛깔조차 이쁘지 않아 마음에 걸렸다.
그치만 우리 남편은 농약 한 번 쓰지 않고 7년은 돌봐온 나무에서 수확하여 처음 판매하는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 애들이랑 한 번도 놀러 다닐 시간 없이 애들한테, 나한테 무던히도 미안해 하면서도 한 주도 빠짐없이 농장에 올라가 쓰다듬고, 보듬어 만들어낸 남편의 자식과도 같은 과일이다.
학교 일이 있는 몸이라 평일엔 과수원 가서 오리와 닭들 모이 주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어 주말엔 비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일을 하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과일이지만 판매대에 올라선 우리 귤은 농약을 쳐서 만들어낸 때깔좋은 귤보다 가격이 낮다.
귤 상자를 쓸어내는 남편의 손톱 밑이 까맸다.
우리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다.
나를 처음 만날때 남편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내려와 교사 생활을 한지 얼마 안되서 얼굴이 하얗고 귀여웠었다.
내심 그런 얼굴에 호감이 갔던 나였는데, 지금 내 남편의 얼굴은 주름이 깊게 지고, 검게 그을려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교사의 모습 보다는 농부의 모습일 것이다.
남편의 까만 손톱 밑보다 내 가슴속이 더 까맣게 타들어 갔다.
남편 몰래 우리 귤을 내가 다 사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흘린 땀이 조금이라도 보상이 된다면...
그래서 악을 쓰며 농사 짓지 말라고 소리지르던 내 부끄럼이 조금이라도 감춰질 수 있다면...
그래서 자꾸 작아져만 가는 남편의 어깨가 당당하게 펴질 수 있다면....
"사람들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겠죠.
그래도 올해도 작년 보다는 유기농산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앞으론 점점 좋아지겠죠."
겨우 이런 소리를 남편에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 소리는 나 자신을 다독이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좋아지겠지....
때깔좋은 농산물보다 촌 아낙네 같은 수더분한 모습을 한 유기농산물을 알아주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