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난 아줌마가 미국에 가서 자리 잡은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남편은 공부하러 학교에 가고 네 살, 다섯 살, 달랑 두 아이와 집에 남겨진 아줌마 슬슬 주변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졌다.
베란다에서 밖을 살펴보니 사람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 용기가 생겼다.
'아파트 주변을 한 번 돌아봐야지...'
왼 손에 아들, 오른 손에 딸 손을 잡고 용감하게 아파트 문을 나섰다.
아파트가 모여 있어도 미국은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라고 해도 대개는 고층 빌딩이 아니다.
낮으막한 삼층 짜리 건물이 군데군데 서있고 사람들은 바로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들락거리기 때문에 걷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이나 산책하는 사람이 가끔 보일 뿐.
그래서일까?
그렇게 사람이 귀해서일까?
사람들은 낯 선 사람을 만나도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마치 잘 아는 사람을 만난 듯이...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아줌마가 용감하게 아파트 밖으로 나섰는데 멀리 앞에서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아줌마 안에서 잠시 갈등이 인다.
인사하면 나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나가야지...
그런데 인사를 하면 '굿 모닝'으로 해야 할까, '굿 에프터눈'으로 해야할까?
아니야, 챙피한데 그냥 다른 길로 빠져서 피해야 해...
아줌마가 갈등하며 걷는 사이 그 사람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이제 옆길로 빠지기는 너무 늦었다.
한국사람들 처럼 살짝 외면하고 모른 척 지나가 주면 좀 좋으련만...
이 사람, 아줌마와 아이들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뭐라고 한다.
'굿 모닝'이나 '굿 에프터눈' 아니면 '하이'하고 인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당황한 아줌마는 우물쭈물 얼굴만 벌개져서 대꾸를 못하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습격을 당한 사람처럼 아줌마는 어쩔 줄 몰랐다.
얼굴이 벌개져서 당황해하는 아줌마를 보고 그 사람은 멋 적은 표정을 짓고는 지나가 버렸다.
그저 단순히 인사한 것인데 얼굴이 벌개져서 당황해하는 아줌마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잘 난 아줌마가 멍청도 하지...
한국사람이라고 인사할 때 꼭 '안녕하세요'만 하는 것이 아니 듯, 미국사람이라고 꼭 교과서에 쓰인 인사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님이 그 순간엔 왜 떠 오르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어떤 인사를 하건 상관없이, 알아 듣고 못 알아 듣고에 상관없이 '아, 네... 안녕하세요?'하면 되듯이 미국사람이 뭐라고 인사를 하건 웃으면서 '하이'하면 될 것을...
얼굴이 벌개져서 우물쭈물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떨다니...
예의 바르고, 인사성 밝고, 상냥한 아줌마가 인사하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무례한 아줌마로 이렇게 빨리 변신하다니...
나 때문에 한국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욕하겠구나...
......'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아줌마 머릿속을 지나가며 아줌마를 비참하게 하였다.
"얘들아, 들어가자."
용감하게 아파트 주위를 살펴보겠다고 나섰던 잘 난 아줌마,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밖으로 나설 때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그저 부끄러움만 가득 찬 채로...
'미국에도 벙어리도 살고 귀먹어리도 살겠지'하고 큰 소리치던 잘 난아줌마, 멍청도 하지...
귀먹어리 벙어리가 당하는 서름이 어떤 것인 지도 모르고 미국에 올 용기를 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