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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난 아줌마가 미국에 가서...[8] 식기세척기


BY ns05030414 2001-12-01

두 번 째 미국에 간 아줌마는 단독주택에서 살게 되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고 잔디가 깔린...
영어는 여전히 못했지만 처음처럼 자신없진 않았다.
아줌마는 집이 마음에 들었다.
전형적인 서민 주택의 하나인 스플리트 레블(split lebel)이었다.
집의 한 쪽은 이층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한 쪽은 그 일층과 이층의 중간에 위치한...
리빙 룸에서 이층 침실에 가기 위해선 계단을 일곱 개만 올라가면 되었고,
훼밀리 룸과 부엌이 있는 아랫층에 가기 위해선 다섯개의 계단만 내려가면 되었다.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구조였다.
아줌마는 이렇게 넓은 집에서 살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미국에선 조그만 집이라고 하였지만 한국에서 살던 공간을 생각하면 왕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처음 아파트에 살 때는 지하에 있는 공동 세탁실에 가서 동전을 넣고 빨래를 하였지만 이 번에는 달랐다.
모든 가전제품이 집에 딸려 있었다.
그릇 세척기도 있었고, 빨래를 말리는 드라이어도 있었다.
에어컨도 물론 있었다.

그 집으로 이사를 한 이튿날 집주인 이 찾아왔다.
집주인은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에어컨 필터를 교환하는 법도 가르쳐주고, 빨래 말리는 드라이어에서 먼지를 제거하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오븐을 사용하는 법도,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모든 가전 제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같이 확인하였다.
수도 꼭지에서 물이 제대로 나오는 지, 하수구와 변기에서 물이 제대로 빠지고 있는 지, 아줌마랑 같이 다니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확인하였다.
나중에 아줌마는 알았다.
그 것이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는 것을...
미국에서는 이사를 들고 날 때, 집주인과 세입자가 그 집의 상태를 함께 살펴보고 기록한 후 함께 서명해야하는 서식이 있다.
혹시라도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분쟁이 생길 때 각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도록...
아줌마는 그런 것도 모르고 집주인이 참 친절도 하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줌마의 미국생활은 한국생활과는 달랐다.
손님을 치를 일이 제법 많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도 있었고,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집 구경하기를 원했고,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끼리는 가끔씩 실컨 한국말로 수다 떨고 싶은 때가 있었다.
이래저래 그릇세척기를 쓸 일이 제법 많았다.

처음으로 손님을 치르던 날 아줌마는 피곤했다.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익숙치 못한 집안 구조로 인해 덤벙거리느라 더욱 피곤했다.
부엌과 다이닝 룸을 왔다갔다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때는 집이 넓은 것이 눈꼽 만큼도 고맙지 않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파김치가 되어 늘어진 아줌마는 설겆이는 그릇 세척기에 맡기기로 하였다.
빈 그릇들을 그릇 세척기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어두고 평소 그릇 씻을 때 사용하는 세제를 세제 넣는 곳에 넣었다.
그릇 세척기에서 물이 쏴 하는 소리가 들리고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엌 바닥에 다리를 뻗고 냉장고에 기대앉아, 아줌마는 그릇 세척기에 고마움을 느꼈다.
느긋하게 눈을 감고 앉아서 그릇세척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피곤도 즐거울 것 같았다.
아줌마가 막 눈을 감으려 하는 찰나 이게 웬일일까?
그릇세척기에서 비누거품이 꾸역꾸역 밀려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릇세척기를 열어 본 아줌마는 비로소 알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릇 세척기에는 전용세제만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가루로 된, 거품이 많이 일지 않는...
집주인이 설명을 해 주었을 것이다.
전용세제에 대해서...
그릇을 말릴 때 얼룩이 지 지 않도록 사용하는 것도...
모든 가전제품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했었으니까.
단지 알아듣는 것 보다 못 알아듣는 것이 더 많은 아줌마 영어 실력이 놓치고 못 들은 것이다.
집 주인이 하던 말 중에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하는 것이 있긴 있었다.
그 땐 못 알아들었었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은 말이...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아줌마, 그릇들을 꺼내고 그릇세척기 안의 세제를 제거해 보려고 하였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날 아줌마는 손으로 그릇들을 씻고 마른 행주질해서 정리하였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서서...
별 수 없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바쁠 수 밖에...
그 이튿날도 아줌마는 쉬지 못했다.
하루 종일 그릇세척기를 돌리고 또 돌렸다.
비누 거품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줌마가 그래도 한국에서는 똑똑하고 야무지다고 제법 소문이 났었다.
누가 이 아줌마가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말을 듣던 그 아줌마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