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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때문에 약 오르지 말자!


BY konkang 2001-12-01

시사저널 제631호 2001년 11월 29일 76페이지

'약' 때문에 약 오르지 말자

건강연대가 제안하는 '의사 과처방 예방법'

지난 7월말, 주부 윤 아무개씨(34, 서울 광진구)는 서울 시내 한 의원에서 의사와 마주 앉았다. 안색을 살피며 의사가 병세를 물었다. 윤씨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3일 전부터 몸이 피곤하면서 말간 콧물이 나온다. 이틀 전부터는 기침과 가래가 나온다. 기침은 심하지 않으나 가끔 나오고, 가래는 누렇지 않고 말갛게 나온다. 평소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감기는 1년에 한 번 정도 앓는다."
경미한 감기 증세였다. 의사는 간단히 진찰한 뒤 처방전을 썼다. 잠시 뒤 간호사로부터 처방전을 넘겨받은 윤씨는 움찔했다. 약 종류가 일곱 가지나 되었던 것이다. 윤씨는 그 처방전을 서울 마포에 있는 건강연대 사무실로 가지고 갔다. 건강연대는 그 처방전을 보고 '과처방' 판정을 내렸다. 처방전에 감기하고 별 상관이 없는 부신피질 호르몬제가 포함되고 약 종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윤씨는 진짜 환자가 아니었다. 건강연대(www.konkang.or.kr)가 의약 분업 이후 의원과 약국의 행태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시 소재 의원 1백49곳과, 약국 100곳에 내보낸 모의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7월26일∼8월7일 조사). 최근 건강연대는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의원의 51%가 가벼운 감기 증세인데도 주사를 권했다. 특히 일반 의원(62.5%)과 나이 많은 의사가 적극 권했다. 재진을 권유한 의원도 14.2%나 되었다.

불필요한 주사 거부하고 처방전 내용 확인하라

처방약 종류와 양도 남용 수준이었다. 의원의 91.9%가 불필요한 소화제를 처방했으며, 64.9%가 가벼운 감기 증세에 필요 없는 항생제를 처방했다. 일부 의원은 1차 항생제도 모자라 2차 항생제까지 처방했다. 또 감기 치료 효과는 없고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 제제(부신피질 호르몬)를 처방한 의원도 5.4%나 되었다.
건강연대 조경애 사무국장은 의사들의 잘못된 상식 때문에 과처방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의사가 항생제의 효과를 과신하고 있다. 감기를 빨리 낫게 하고 합병증을 줄인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춘천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오 아무개씨(34)는 "항생제는 누런 코가 나오거나 열이 많을 때, 그리고 2차 감염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소화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소화제는 분명 감기와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부 환자가 감기로 인한 소화불량을 호소하고, 약을 먹으면 속이 아프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소화제를 쓸 수밖에 없다"라고 해명했다.
건강연대는 의원들이 처방전과 영수증 발급을 꺼리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처방전을 의무적으로 2장 발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겨우 17.6%만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연대는 환자가 알 권리를 찾고 약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와 약사에게 꼬치꼬치 물어야 한다며 몇 가지 지침을 내놓았다.
△처방전 2장을 반드시 요구한다. 약화 사고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처방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건강연대에서 확인해 준다). △처방전의 내용을 물어본다. 자신에게 처방한 약이 어떤 약인지 묻고, 자신의 지병이나 신체에 부작용이 없는지 확인한다. △단골 약국을 만든다. 약사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 이때 약의 이름, 효과, 주의해야 할 점, 부작용 등을 꼼꼼히 물어본다. △불필요한 주사는 거부한다. 대부분의 감기는 주사가 필요 없다. △영수증을 꼭 받거나 신용 카드로 결제한다. 과중하게 약값을 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건강보험공단이 보내준 진료 내역과 같은지 비교할 수 있다.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