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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난 아줌마가 미국에 가서...[13]매너맨


BY ns05030414 2001-12-14

미국 문화가 격식을 따지는 문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따져야 할 경우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줌마 부부도 격식을 차리는 모임에 참석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은 한복을 입기도 한다.
한복을 입고 외국 사람과 함께 하는 파티에 갈 때 아줌마는 영화 속의 귀부인 처럼 행동해 보고 싶기도 하다.
한복의 화려함이 주는 충동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자동차 문을 열고 기다리면 옷자락을 살짝 치켜들고 우아하게 자동차에 타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기다리다 남편이 자동차에서 내려 아줌마 쪽 도어를 열고 기다리면, 남편이 내민 손을 잡고 느릿한 동작으로 내리고 싶다.

그러나 그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아줌마의 꿈일 뿐이다.
남편은 그런 신사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한국 남자다.
아줌마가 타기도 전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고 서두르는 사람이다.
시간 없는데 굼뜨게 행동한다고 아줌마를 구박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아줌마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모습이란 찾아 볼 수 없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도 아줌마가 내리거나 말거나 상관도 하지 않는다.
자동차 문 쾅 닫고, 아줌마가 내렸거나 말았거나 혼자서 씩씩하게 걸어 간다.
뒤 따라 가는 아줌마가 종종걸음을 치거나 말거나 뒤 돌아 보는 법도 없다.
파티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자기가 아는 사람 만나 악수하고 인사하고 돌아다닐 뿐 아줌마는 한 쪽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게 하기 일쑤다.
한국 사람 끼리 모이는 장소에서도 그러면 망신스러울 일인데, 동행한 여자를 여왕 처럼 떠 받들고 다니는 외국 사람하고의 모임이라면 더 창피하고 쑥스럽다.
몇 번 그런 모임에 참석해 본 아줌마는 남편에게 불평을 했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 남자의 매너 없음을 광고할 일이 아니라면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계속하면 앞으로 동행하지 않겠다고 협박도 해 보았다.
처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 남자는 어쩔 수 없다.
그 들에게 여자란 하인같은 사람이지 자기가 모시고 다녀야 할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가 보다.집에서 아줌마에게 그리 못되게 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줌마의 남편은 밖에서의 매너는 형편 없었다.

그러나, 한국 남자라고 모두 매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석구씨는 달랐다.
마치 서양 남자들 처럼 부인을 떠 받들었다.
부인이 자동차에 타고 내릴 때 문을 잡아 주는 것은 기본이다.
부인이 앉기 전에 의자를 뒤로 당겨 편안하게 앉을 수 있도록하고 부인이 편안하게 자리한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자기는 앉는다.
부인을 혼자 외롭게 두는 법도 없다.
이리저리 부인을 모시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대화를 나눈다.
정석구씨는 아줌마가 보기엔 어느 한 곳 트집 잡을 수 없는 완벽한 매너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석구씨 부부와 함께 파티에 참석했던 한국 아줌마들은 누구나 정석구씨 부인을 부러워하였다.
그런 남편하고 살면 불평이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남편하고 살면 저절로 우아해지는 것일까?
정석구씨 부인은 멋쟁이였다.
영어도 잘 하고, 그림과 음악에 대한 상식도 풍부했다.
그녀랑 이야기를 하면 교양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들 몇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남자의 매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정석구씨를 칭찬하고 그 부인을 부러워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냥 듣고 있기가 쑥쓰러웠는 지 정석구씨 부인이 말했다.
"실은 집에 도착하자 마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답니다.
혼자서 자동차 문을 쾅 닫고 내리고 내가 바로 뒤에 따라 가는 데도 현관문을 확 밀쳐 닫는다구요.
코가 깨질 뻔 한 게 몇 번 인지 몰라요.
다른 때는 그러지 않는데 외국 사람들 하고의 모임에 다녀온 날은 유난하답니다."
정석구씨 부인의 말을 들은 아줌마들은 믿기 어려웠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정석구씨 부인이 거짓말을 할 이유란 없었으므로...

그 날 아줌마는 알았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줌마만 헤매고 사는 것이 아님을...
아줌마는 정석구씨 심정을 헤아릴 것도 같았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연극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럴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그 후로 아줌마는 남편의 매너를 문제 삼지 않았다.
아줌마 손으로 자동차 문 열고 타고 내리는 것이, 코가 깨지는 것 보단 나을 것 같아서...
그저 사람이나 고기나 제 놀던 물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