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뒤로하고
지애비 닮아서 머리가 무쟈게 큰 아들놈을 낳았다.
누구는 '악'소리 한번지르고 낳았다는데...
나도 한번만 지르고 낳을 꺼라고 주변에선 걱정하지 말랬다.
속았다.
그건 죽음이었다.
아기 머리만 나오면 쑤욱 빠진다고 하더니만....
머리가 나왔나 싶더니 가슴에서 또 걸리는거다.
울아긴 머리둘레보다 가슴둘레가 더컸다. 씨이~
담당 선생님은 아기가 작다고 하셨다..
걱정이 됐지만 건강하리란 믿음으로 41주를 버텼다.
또 속았다.
4Kg다.
아기 머린크지,
자궁문은 안열리지,
아긴 다 내려왔다지,
아파죽겠는거.......
미친듯이 소리지를기를 3시간.
그때의 내 모습은
영화 엑소시트의 그 여자아이..(끔찍하군)
하옇튼 그 비슷했으리라.
문제의 울신랑은 그래도 옆에서 손은 잡아줬다.
한 한시간정도...
그럼 나머지 두시간은 뭐했냐구.....
책읽고 있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와중에 책이 눈에 들어오는지....
한자세만 유지하기가 힘드는지
앉았다, 일어섰다, 기대다가
급기야는 요동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벽에 등붙이고 태연하게 책읽고 있었다.
아파서 미치겠는데
신랑이 그러고 있으니 환장하는줄 알았다.
이래서 미치고 환장한다는 말이 생겼나부다.
우리신랑 간호사 언니한테 꾸중들었다.
난 자연분만했는데
7시간후 수술실에 가서
또 수술을 했다.
자궁안이랑 자궁벽을 또 꿰맨단다.
이틀정도 지나니 서서히 생각할 힘도 나고
엄마도 보고싶었다.
울 엄만 나 낳는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키우느라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그런 생각에 한참 울었다.
우린 엄만 참 냉철한 분이시다.
공부 잘하는 자식보다
돈 잘 벌 수 있는 자식으로 만들려고
우릴 공장으로 밀어넣었다.
그나마 난 농땡이를 좀 쳤지만
착한 울언닌 방학만 되면
공장가서 아르바이트했다.
고생을 알아야 돈의 무서움을 안다고.
그래서 울언닌 방학만 되면
입에 쉰냄새를 풀풀풍기면서 다녔다.
자식이 부모한테 용돈타쓰는건
아직 어린 우린세대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그 용돈 타쓰는게 무쟈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과자사먹는데 쓰는 것도 아니고
학용품을 사야되는데
3시간을 벌서듯이 공손하게 서있어야
필요한 금액의 90%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있는 나는
하청업체에서 돈받으러온 아저씨랑 같은 심정이었다.
울 엄만 그런사람이었다.
근데 난 안다.
그렇게 하는게 얼마나 가슴아픈지를.
고3 때였다.
모처럼 일찍 학교를 파하고 저녘장을 보려고
엄마랑 같이 길을 나섰다.
아마 며칠후면 석가탄신일이 되는지
동네 어귀에 있는 '처녀보살,동자보살'집에는
크기가 다른 색색의 연등이 걸려있었다.
그걸 보면서
성당에서 신부님이 입으시는 제의가 생각이 났다.
제의는 다섯가지 색깔로 나뉜다.
그 색마다 모두 의미가 있고 입는 시기가 있다.
난 연등도 각 색마다 의미가 있으리라는 짐작에
외가가 불교인 관계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연등이 각양각색이네~
연등마다 의미가 다르겠지?"
울 엄마
"그래 다르다 카더라.
큰거는 5만원, 작은거는 3만원!!"
"............"
이번겨울엔
엄마한테 내복몇벌 사드려야 겠다.
젤 조은걸루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