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087

잘 난 아줌마가 미국에 가서...[20]냉동꽃게가 손가락을...


BY ns05030414 2002-01-11

종인이네는 생선 가게를 하는 집이다.
뉴욕에서 무슨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이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사업이 망한 후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살 곳을 물색하다 워싱턴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아줌마가 종인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땐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방문 비자로 왔던 할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아이들을 돌 볼 사람이 없었다.
일곱 살, 여섯 살, 두 사내아이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저희들끼리 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에는 아이들 나이에 따라 혼자 놀아도 되는 시간의 제한이 있다.
이 것을 지키지 않는 부모는 자칫하면 아이를 빼앗길 수도 있다.
아이를 돌 볼 자격이 없는 부모라고…
미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보다 신고 정신이 투철하다.
언제 누가 신고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종인이 엄마는 아이들만 집에 두고 일을 나갔다.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아이 보는 사람에게 돈을 줄 형편이 못 된다고 하였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림만 하던 아줌마는 딱한 사정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아줌마의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여서 잘 어울려 놀았다.
아줌마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을 종인이 집에 데리고 가서 놀았다.
종인이 형제를 아줌마 집에 데리고 와서 놀게 하기도 하고…

토요일이면 종인이 엄마는 아줌마에게 생선을 가져 다 주곤 하였다.
일요일 월요일은 가게가 문을 닫는 날이라고…

종인이 아빠는 낚시가 취미였다.
쉬는 날이면 낚시를 가서 고기도 잡고 꽃게를 잡아오기도 하였다.
하루는 종인이 엄마가 아줌마에게 냉동 꽃게를 주었다.
슈퍼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커다란 종이 봉지 한 가득 주었다.
종인이네 커다란 냉동고는 꽃게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인이 아빠가 낚시 한 것이라고…
다 팔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데 또 잡으러 갔다고 종인이 엄마는 불평이었다.


아줌마는 꽃게 찜을 좋아한다.
찜통 밑에 맥주를 붓고 시장에서 파는 찝찔하고 매콤한 쏘쓰를 살살 뿌려 쪄낸 꽃게라면 앉은 자리에서 대 여섯 마리는 거뜬히 해 치운다.
미국에 와서 처음 그 맛을 본 아줌마는 그 맛에 반했다.
메릴랜드는 여름이 꽃게 철인데 꽃게 철이 되면 꽃게를 생선 파는 곳에서만 팔지 않는다.
여기 저기에서 살아있는 꽃게를 파는 트럭을 만나는 일이 흔하다.
값도 싸다.
그 것을 보고 군침이 돌지만 아줌마는 쉽사리 사진 못한다.
아줌마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에서 꽃게(blue crab)가 많이 잡히고 싸다고 해도 아줌마에겐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아줌마는 가난한 유학생 부인이다.
싸다는 것은 한국에 비해 싸다는 것이지 온 가족이 꽃게 찜을 실컷 먹으려면 아줌마에겐 결코 만만한 돈이 아니다.
그런 꽃게를 온 가족이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얻은 아줌마는 날아갈 것 같은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줌마는 미국 꽃게로는 꽃게탕을 하지 않는다.
생긴 것은 비슷한데도 국물 맛은 한국 것만 못하다.
미국 사람들이 파는 것은 주로 숫컷이라 그런가 했는데 암컷으로 해 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찜을 하는 것이라면 숫컷이 더 좋다.
살이 많아서…
종인이 엄마가 준 것은 모두 숫컷이었다.

집에 돌아 온 아줌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한 바탕 자랑을 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봉지에 그득한 꽃게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을 기대감으로 흐뭇해 하였다.
반은 다음에 해 먹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반은 바로 해 먹기로 하였다.
살아있는 게라면 손가락을 물리지 않으려고 먼저 집게 발을 떼버렸겠지만 얼린 것이라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줌마는 마음 놓고 손으로 집어 들고 흐르는 물에 솔로 게를 박박 문질러 씻었다.
꽃게찜을 먹을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줌마는 자기가 음치라는 사실도 잊고 흥얼거리며 신이 났다.
“으악!”
콧노래를 부르며 냉동꽃게를 씻던 아줌마가 비명을 질렀다.
팔짝팔짝 뛰며 난리가 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아이들 앞에서 엄마의 위신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는 소리를 냈다.
흔들어 대는 아줌마의 오른 손 집게 손가락에는 게가 한 마리 매달려 있었다.
아줌마가 얼마나 요란하게 소리지르고 손을 흔들어 댔던지 게는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그래도 집게발 하나는 아줌마 집게 손가락을 꼭 물고 있었다.

남편도 달려오고 아이들도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아줌마 손가락에서 벌건 피가 솟았다.
조금 과장하면 손가락이 끊어질 만큼 깊은 상처가 났다.
낯 설고 물 설고 말 설은 미국에서 설움을 많이 받고 살긴 하지만, 꽃게까지 아줌마를 만만하게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냉동꽃게에게 공격 당할 것이라고는…
냉동꽃게라고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얼린 꽃게도 다시 봐야 된다.
참고로 종인이 엄마가 준 꽃게는 얼린 지 이틀 된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