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이마트에 갔었습니다.
이마트에 갈때마다 쌍쌍이 나온 부부들을 보고 느끼는건데
사람들은 장보러갈때 카트를 끌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결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하니 그래서 기분이 않좋냐며
혼자인 나때문에 맘 아파 하십니다.
사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장보러가는 기분, 좋을것 같은데
제가 만난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인지
그저 부부라서 어쩔 수없이 하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기에 부럽지도 않습니다.
작년말 채팅을 했습니다.
채팅을 몇번 했어도 한번도 누굴 만나본적 없었는데
그날은 심심했는지 아주 잠시 채팅을 하고 술 한잔만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갔더랬습니다.
동갑인데다 유부남도 아니라기에
정말 술한잔 마시러 나간거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술한잔만 하고 들어왔습니다.
맘에 드는지 안드는지도 몰랐습니다.
아주 싫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닌것 같고
하도 만나달라고 하기에 두어번 더 만났습니다.
그 정도 만나도 필이 잘 안꽂히는데다
집요한 구석도 있어서 이건 아니다 싶어
안만나려했습니다.
제가 안만나려하니 상대가 더
집착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한 열흘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다
생각해보니 잘나지도 못한 내가 날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너무 못되게 구는것 같아
관용을 베푸는 마음으로 한번 더 만나주었습니다.
전보다 맘에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만날때마다 새록 새록 정도 들것 같았습니다.
좋은 면이 나쁜면을 커버하기 시작하며
전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회사 마치고 날 기다리느라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을 그를 생각하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그것도 싫지 않은 누군가가,
날 좋아해주는 기분, 솔직히 좋았습니다.
그는 따뜻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이 꽉찬 날 예뻐해주고 귀여워해줌은 물론이고,
내가 집에서 먼곳으로 회사다니느라 힘들겠다면서
안쓰럽게 생각해주고,
몸에 베인 제 상냥함 때문에 남들이 지분댈까
질투도 하는 그가 귀엽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만났을까..
어느 주말 그가 집에 일이 있어서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쉽게 집앞에서 그를 보내고 문득 아주 잠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는 도중 핸드폰을 한 그에게
정말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집에 누군가 기다려줄 사람이
있는것처럼 그렇게 가니 의심스럽다고...
농담이었습니다. 정말 그런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어릴적 연애하면서 설레는 그런 감정이 우리에게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안쓰럽게 느껴질때도 많았습니다.
나도 혼자이면서 그때까지 혼자인 그가 이유없이 안쓰러웠습니다.
작고 고운 그의 손을 보면 그런 맘이 더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상 내가 누군가를 안쓰러워한다는것은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요.
며칠뒤 다른날처럼 출근해서 그와 메신저를
주고 받았습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않는데 어쨋든 그때 그가 유부남인것을
밝혔습니다. 첨에는 정신이 몽롱해져서
그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애 아빠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혼자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는
그 사실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그리 많이 나질 않았습니다.
속인게 분해서 막 패주어도 시원치 않았을텐데
별로 화도 안나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가 채팅하고 벙개 나오면서 다 솔직히 말할까나
누가 채팅해서 사랑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나올까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가 그나마 지금이라도
내게 솔직해져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미안하다 싹싹빌며 받지 않는 핸드폰을 계속 때려대는
그로부터 이유라도 듣고싶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만난다는게
막상 만나니 참았던 눈물이 났습니다.
화가 나서라기보단 이젠 그만만나야 한다는 사실때문에
눈물이 났습니다.
이젠 양심에 가책없이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를 만나더라도 예전처럼 설레기만한 맘으로는
만날 수 없을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날 이런 상황에 빠뜨린 그가 원망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그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가 사실을 말해주어 고마우면서도
차라리 모르고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나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에게 집안에 문제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반응은 바람피는 사람이 주로하는 상투적인 대답입니다.
아내가 싫다는 것이지요.
반은 이해하고 반은 그렇고 그런 수법이라 생각됩니다.
살다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을테고,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느낌이 색다를테지요.
오늘 그의 와이프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받기전에 그의 핸드폰 뒷자리와 같은 번호인데
다른 번호이기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여자 목소리기에 눈치를 챘습니다.
난 생각보다 침착했는데
그쪽은 침착할 수가 없었는지
듣기 거북한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디냐, 물증이 있다,
간통, 유부남을 왜만나냐, 어디까지 갔느냐,
직위가 높으냐, 얼굴이 이쁘냐..
그 와이프 말마따나 드라마에서 보던 일이
제게도 일어났네요..
사실 그가 유부남인걸 알고도 몇번 만났습니다.
그에게 맘이 약해져서 무자르듯 끊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만든 그가 오늘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격해진 상대의 말에 화가 나서
나도 유부남인지 얼마전에 알았으니
맘대로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전화가 왔길래 망설이며 받았습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다음은 그동안의 상황에
대한 심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일단 나부터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유부남인줄 얼마전에 알았다고
사실대로 말해버렸는데
총각행세하면서 여자나 꼬시는 사람으로
자신의 남편을 생각할 걸 생각하니
나 혼자 살겠다고 그를 팔아 파렴치한 인간으로
만들게 되어 맘아팠습니다.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나쁜 사람이라면 끝까지 속이려 했을테지요..
그가 와이프에게 엄청 깨질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맘아팠습니다.
남편 몰래 전화를 하는지 갑자기 전화가 끊겼습니다.
하루종일 그일로 맘이 않좋다가 밤에 일찍 잤습니다.
자다 깨서 핸드폰을 받았는데 12시가 넘은 시각에
다시 그의 와이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집안은 그 일로 풍지박산이 났다더군요.
하루종일 싸운것 같습니다.
제가 유부남인줄 몰랐다 한것을
서로 묻지않고 대답하지 않은것으로 알고있기에
차라리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위안이 될테지요..
별 사이 아니니 걱정말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자기 신랑도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테지만
막상 그의 와이프한테서 그말을 들으니 허전하네요..
하루 종일 그 일로 싸웠을테고
제 정신이 아닐 그의 와이프를 생각하니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맘이 들기도해서
한술 더떠서 제가 죄를 뒤집어 썼습니다.
이혼할 생각이 아니라면
자기 신랑을 믿게 만들어야 할것 같아서요.
거래처 일로 알게 되었는데
그쪽은 별 맘이 없었는데
제가 좀 더 좋아해서 연락하다보니
그쪽 신랑이 아무래도 자신이 유부남임을
밝혀야할것 같아서 말한것 같다고...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요?
하루종일 깨지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제 맘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의 와이프 말에 의하면 그가
별일 아니라면서, 날 그리 못믿겠냐고
작은 아이 붙잡고 울기까지 하더라는데,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전 그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어
하마터면 제발 신랑 밥 좀 잘 챙겨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얼마전 그가 집에서 거의 식사를 안한다는말에
안쓰럽게 생각했었거든요..
어쨋든 그말은 감히 제가 할말이 아니지요..
그와 어째볼 생각 없습니다.
별일 아니겠지요..
다 나이들어서까지 혼자라 쉽게보인 제 잘못이지요..
내일부턴 독하고 냉정하게 그를 대해야할것을 생각하니
기운이 빠지고 힘이 듭니다.
아니, 이젠 그가 문제가 아니라
내 감정을 누르기가 힘이드네요..
그 일로 깬 후 잠을 잘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