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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만두가 무서워요.


BY hl1lth 2002-01-24

해마다 이맘쯤 되면 마당에 묻어둔 김치 독에서 묵은 김치를 꺼내고, 다진 고기와 두부, 각종 야채를 넣어 속을 만들어 만두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두를 만들어 먹으려고 김치 독을 열어보니, 유난히 김치가 맛있었던 때문인지 김치가 바닥이 나려고 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봄까지 김치를 먹으려면 아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아쉽지만 김치뚜껑을 닫고, 대신 가까이 사는 여동생 집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생은 김치가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그렇쟎아도 만두를 만들까 생각 중이었는데 같이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며 좋아한다. 동생보고는 김치를 넉넉히 꺼내서 잘 다져 놓으라고 이른 뒤, 나는 시장으로 가서 몇 가지 재료를 구해 가지고 동생 집으로 향했다. 대충 동생과 내가 챙겨야 할 이웃집들을 계산해보니 한끼씩만 해결할 정도로 나누어 먹는다고 해도 만두 200개는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시장 보따리를 보고는 동생이 입을 떡 벌리고 다물지를 못한다.

"이쒸~ 이렇게 크게 일 벌일 줄 알았으면 만두 만들어 먹자는 말 안 했을 텐데. . ." 궁시렁 거리는 이모를 보고 우리 딸들이 합창을 한다. "이모, 이건 아무 것도 아니예요." 뒷말이 어떤 말이 나올지는 너무도 뻔한 지라 난 미리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가 않고, 인사를 드려야 할 분은 많았는데 가계부를 아무리 들여다보고 연구를 해 보아도, 10만원 이상을 선물 살 돈으로 지출 한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10만원, 10만원으로 소중한 모든 분들께 골고루 선물을 나누어 드릴 좋은 방법이 없을까?

평소에 너무 우리 내외에게 잘 대해 주신 분들이라 꼭 인사는 하고 싶었고, 마음에 차는 선물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돈이 부족하고. .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자니 그분들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에 궁리를 한 결과 "정성이 최고지~, 그래 결심했어."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만두를 빚어 얼린 후, 폐백 떡을 넣어 보내는 대나무 바구니에 보기 좋게 만두를 담아 포장을 하고 보자기로 싸서 보내면, 얼마 있으면 다가올 신정에 적당한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우선 적당한 크기의 대나무 바구니 10개를 준비하고 포장지와 보자기까지 준비한 나는 만두 속과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시장을 다녀왔다.

돼지고기5근, 소고기5근, 푸추7단, 표고버섯 5근, 홍당무 4개, 양파 10개, 호박4개, 두부 10모, 김치 깨끗이 씻은 것 5포기, 쪽파 반단. 밀가루 3kg 짜리 2포대.

아득했지만 내색도 못하고 난 팔을 걷어 붙였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친정 어머니까지 오시라고 해서는 아이들 둘과 밀가루 반죽을 하여 만두피를 만들어 내시는 동안 난 속 재료를 준비했다. 속 재료를 만들고 보니 커다란 함지박으로 하나 가득. .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까봐 조그마한 통에 속을 옮겨 담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는 마루로 나가니 아이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반죽을 치대느라 열심이다.

쟁반을 쭉 늘어놓고 냉장고의 냉동실에 급냉으로 얼릴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나는 어마어마한 작업에 들어갔다. 암만 빚어도 끝이 나지 않는 만두 만들기. 속을 담아온 그릇이 비었다 싶으면 다시 꽉 꽉 채워서 다시 내오는 야속한 엄마, 아이들은 그래도 군말 않고 할머니와 열심히 만두피와 만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3kg짜리 밀가루 반죽이 만두피로 바뀌어 끝을 보게 되자 "야호~ 다 만들었다." 두 아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더 남았어." 3kg짜리 밀가루 포대를 새로 반죽하라고 내밀자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 또 ?" "응." 잠시 침묵이 흐르고. . . "엄마, 이거 발 깨끗이 씻고 발로 밟아서 반죽하면 안될까여?"

그날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만두 만들기가 끝나고. . . 맛이라도 보라며 만두를 물에 삶아 양념간장을 곁들여 마루로 나오자, 이미 친정 엄마는 바닥에 기진맥진 누워 계시고, 아이들은 "엄마, 나 이제 만두 보기만 해도 지겨워여." "나도 만두가 무서워여."한다.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미안하고 멋적었던 난 "싫으면 관둬라 뭐," 사실은 나도, 손가락이 아퍼 만두를 집기도 힘들었지만, 어쩐지 그 좋아하는 만두가 먹고 싶지 않아서 이상했지만. . . 만두를 집어 맛나게 얌얌거려 보였었다. 그날 만들어진 만두가 냉동실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느라 쭈~욱 늘어져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집이 만두공장이 된 것 같았다

그해의 만두 만들기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만두를 만들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그 일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내었던 것 같다. 놀랄 만큼 대단한 끈기와 정성으로 함께 만두 만들기를 해냈던 그날의 아이들, 그리고 다시는 만두로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은 나, 그러나. . .질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두 빚기를 끝내지 않고 여전히 이웃들과 만두를 만들어 나눠 먹기가 즐거운 나는 아이들 말대로 못 말리는 엄마 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