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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살림하는 남편일기(펌)


BY kjh697 2002-02-16

[책]살림하는 남편일기


박정희 기자 / jhpark@dominilbo.com



‘남자다움’ 의 허상 아직도 붙들고 사세요.

그는 스스로를 주부라 한다. 잠자리에 들면 ‘내일은 뭘 해먹지. ’ ‘양파가 떨어졌는데’‘화장실 청소는 언제했더라’‘아이 방청소는 언제 했더라’와 같은 ‘쫀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한 주부. 그의 주된 일은 글쓰기지만 머릿속은 살림살이 걱정에 점령당해버렸고, 그는 현재 전업주부인 자신을 절감하고 있다.

그에게도 한때는 야무진 꿈이 있었다. 5년전, 오랜 자취생활에 지친 그는 결혼하면 당연히 식탁이 풍성해지리라 여겼고 또 당연히 요리는 아내의 몫이라 생각했다. 결혼전 그의 아내될 사람은 깔끔한 성격에 일거리도 있었다. 그는 ‘왔다’싶었고 룰루랄라 결혼했다. 신혼여행후 출장갔다 오면서 그는 전화를 삐리리했다. “나 해물탕 먹고싶어.” 앞치마를 두른 아내를 보고 그가 속으로 하는 말. ‘어 자세 나오는데, 바로 이거야.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 흐흐흐, 냄새 죽이고….’드디어 등장한 해물탕.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들어가야 할 쑥갓이 흐물흐물. 칭찬을 기다리던 아내에게 그는 순서가 잘못됐다 지적하지 않을수 없었고. 그러자 입술을 부들부들 떨던 아내의 숟가락 던지는 소리. “순서. 그게 그리 중요해. 조잡하게 그런 타박이나 하고….” ‘조잡’이라는 단어가 뒷머리를 강타하고. 아내의 막말에 대항할 단어를 머릿속에서 찾은 뒤 “그기 해물탕이가 잡탕이제. 니 저능아 아이가.”이후의 전개는 드라마에서 많이 본 대로다. 아내는 울고, 그는 슬리퍼 끌고 현관문 열고 집 나서고. 막상 나갔지만 갈 곳 없었고 아파트 벤치에 이빨을 다닥거리며 앉는다. 데리러 온 아내, 그날 밤 그는 아내가 말하는 그의 조잡함에 대해 조근조근 지적당했다.

그 후 집들이다 뭐다 손님치를 때 수저가 3개만 넘어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내 대신, ‘마파두부’만드는데 2시간이 넘는 아내 대신, 그는 ‘재능’을 살려 일을 처리한다.

그의 아내는 요리나 살림은 못해도 매사에 상황판단이 빠르고 이성적이었다. 그가 살면서 감탄하는 대목이 아내의 판단력.명석함이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니며 석사과정 공부하느라 바빴고, 살림은 배째라 수준이었다. 하나 아내의 논문이 상까지 받았을 땐 그의 어깨가 으쓱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래도 그가 많이 거들긴 했으나, 이때까지만해도 전업주부가 될 줄 몰랐다. 한때는 아내는 잘 나가는데 자신은 도서관에서 하루 진종일 죽치고 앉아있거나 했고, 그 자신 스스로 비참하다 여겼다. 그런데 살림이 재미가 있었고, 방치된 재능을 인정하기로 하면서 세상사는 재미가 ‘마구’ 솟구쳤다. 살림살이 잘 하면서‘수신제가’하기로 하자 ‘치국평천하’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남성님들, 처자식 부양하려 자신의 꿈을 접었노라 말하는데 그것 또한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나.” 행복해지려면 인생의 척도를 조금만 수정해도 될텐데 도대체 그놈의 ‘남자다움’의 허상만 붙들고 살다니.

왜 모든 남성들은 치국하고 평천하만 해야 하는지,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법’이나 ‘이렇게 하면 아내한테 미움받는다’같은 쫀쫀한 교육을 받지못한 걸까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러하니 그의 말마따나 이 책은 ‘남자 우사 다시키려’ 쓴 것이 아니고 남자들이 집안일과 맞닥뜨릴 때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하고, 남녀에 대한 통념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사람살이란 뭔지 등의 정서적 문제를 ‘남자들이 읽고 고민해주길’ 바라는 희망이 들어있는 게다.

신혼기를 넘어 아내의 임신.육아를 거치며 그가 털어놓는 일상이 생생하고, ‘보통 여자보다 더 꼼꼼한 그의 전업주부기질’에 탄복하게 된다.

며칠 뒤면 설, 주부의 희생이 미화되기도 할 때, 굳이 가벼운 글쓰기체의 이 책을 출판기사의 머리글로 소개하는 건 그의 ‘세상살이’를 보며 남자든 여자든 오래된 갇힌 습관과 세계관을 들춰보라는 마음에서다. 김전한 지음. 238쪽. R&D Book. 7000원.



* 경남도민일보는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입니다.
기사게재일자 : 2002/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