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 개봉된 영화로 '그들만의 리그'란 작품이 있었습니다.톰 행크
스,마돈나,지나 데이비스가 나왔죠.이 영화는 1943년 미국 여자프로야구
팀을 소재로 한 코미디물이었습니다.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실화에 근거
를 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보수적 정서가 지배했던 40년대에 '부득이하
게' 여자야구팀이 등장한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습니다.2차대전에 미국
이 참전을 선언함에 따라 당시 남자선수들은 대거 입대를 하게 됐습니
다.이 결과 메이저리그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6개의 여자프로야구팀
을 급조했는데 이것이 '그들만의 리그'의 탄생배경입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당시 메이저리그가 심각한 선수난에 시달렸음
을 알 수 있습니다.실제로 이 당시 마이너리그는 일시 폐쇄됐고, 메이저
리그도 기반이 흔들렸습니다.15살 소년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고,
41살 먹은 아저씨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3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했
을 정도니 경기 수준이 얼마나 부실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그
럼에도 메이저리그가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건 국민의 사기를 배려한
정부의 정책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구장에 야구는 있었지만 주인공은 없었습니다.당대를 주름잡
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도 56연속경기안타의 조 디마지오도 탈삼진
왕 밥 펠러도 그들이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모두 징집돼 전
쟁터로 갔기 때문입니다.야구가 아무리 ‘국민적 오락’으로 자리잡았다
고 하지만 프로야구 스타들도 전쟁터로 나가는 데 열외일 수 없었던 것
입니다.
if
만약 이때 이들 스타들이 전쟁터로 가지 않고 계속 야구를 했더라면 메
이저리그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국의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레너드 코페트가 쓰고 이종남 기자가 번역한 '야구란 무엇인가'는 이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을 제시합니다.
1936년 열일곱 살의 나이로 클리블랜드에 입단한 밥 펠러는 곧바로 탈
삼진 기록들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통산 266승을 따낸 그는 노히트 노
런 세 차례에다 1안타 경기를 열두차례나 연출했고,1946년에 쌓은 348
탈삼진은 1965년 쿠펙스(382개)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거의 20년간 시
즌 개인최다탈삼진 기록으로 남아있었다.그러나 펠러는 야구인생의 황금
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네 시즌을 손해 봐야 했다.그는
스물세살 때 징집돼 군복무를 했고,스물일곱 살이 돼서야 야구계에 복귀
할 수 있었다.만약 평화시대가 계속 되었다면 그는 개인 통산 기록에
100승과 1천 탈삼진쯤을 보태고 '내가 역대 일인자이노라'라고 큰 소리
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잃어버린 4년 때문에 가장 위대한 투수 자
리는 차지할 수 없게 됐다.
-'야구란 무엇인가'의 '가장 위대한 투수'편에서 발췌-
코페트는 밥 펠러의 경우만 예로 들고 있지만 디마지오나 윌리엄스에게
도 이런 아쉬움은 남습니다.3~4년간의 군복무 후 이들이 보여준 빛나
는 업적은 이런 가정을 더욱 뒷받침해줍니다.
1946년: 4년만에 군에서 복귀한 테드 윌리엄스가 이끄는 보스턴 레드삭
스가 1918년 이후 28년만에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하다.탈삼진왕
밥 펠러가 해군에서 복귀한 뒤 처음 풀시즌을 뛰면서 348탈삼진을 기록
하다.
1947년: 조 디마지오, 아메리칸리그 MVP에 오르며 양키스를 월드시리
즈 우승으로 이끌다.테드 윌리엄스 타격 3관왕을 차지하다.밥 펠러 20
승을 거두며 AL 다승왕에 오르다.
공공의 적?
지난 2일 새벽 기자회견을 위해 입국한 유승준은 인천국제공항을 통과하
지못했습니다.관계당국에 의해 유승준이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
는 자'로 판단됐기 때문입니다.이렇게 유승준이 '공공의 적' 취급을 당
한 이유는 병역회피 의혹때문이었습니다.미국 시민권 취득에 대한 그의
변명은 이랬습니다.
"2년반동안 공익요원 근무를 하고 나면 나이가 거의 서른이 된다. 댄스
가수의 생명은 짧다."
이 말을 들으며 저는 위에 언급한 선수들이 떠올랐습니다.아마 유승준
이 음악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도 야구를 사랑했을 것입니다.그
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전쟁터에서 희생했습니다.이
들은 징집된 것이고 유승준은 선택이었다라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들은 모국이 자신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유승준은 국가가 그에게 의무를 지우려는 순간 국적을 바꿨습니다.
그의 본심이 어찌됐든 현실적으로 그는 한국에서 많은 부와 명예를 이루고는 자신이 불리할 땐 쏙 빠져버린 셈이 됐습니다.그렇기에 그의 변명에서 궁색함이 느껴지는 것 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야구스타들은 징집으로 인해 역대 최고의 투수
와 타자가 될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을 잃었습니다.대신 그들은 대중
의 신뢰를 얻었습니다.그리고 이런 대중의 애정이야말로 먼 훗날 그들에
게 100승보다도 200홈런보다도 가치있는 자산이 됐음을 우린 압니
다.
이번 '선택'에 따른 유승준의 손익계산서는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그
것을 결정짓는 건 유승준이 아닌 우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